항목 ID | GC044010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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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成化 |
이칭/별칭 | 나성화(羅聖化),나상집(羅相集)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윤미 |
출생 시기/일시 | 1881년 - 나성화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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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2월 - 나성화 심남일 의병 부대의 후군장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7월 - 나성화 의병을 지휘하여 일본인 쿠리야마 츠루키치를 처단하고 군자금 모집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 나성화 일본군에 체포됨 |
몰년 시기/일시 | 1910년 6월 16일 - 나성화 순국 |
추모 시기/일시 | 1986년 - 나성화, 건국 포장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나성화,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
성격 | 독립운동가|의병 |
성별 | 남 |
대표 경력 | 심남일 의병 부대 후군장 |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나성화(羅成化)[1881~1910]는 나주(羅州) 왕곡(旺谷) 출신으로, 1907년부터 1909년까지 심남일(沈南一) 의병 부대에 합류하여 무안(務安), 영암(靈岩), 남평(南平)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하였다. 나성화(羅聖化), 나상집(羅相集)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활동 사항]
1907년에 박영근(朴永根)·유종환(兪鍾煥)과 함께 나주에서 의병 활동을 시작한 나성화는 1908년 2월에 심남일 의병 부대의 후군장으로 선임되었다. 후군장이 된 나성화는 총기 40여 정으로 무장한 4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무안·영암·남평 등지에서 일본군과 교전하였다. 1909년 7월에는 정낙중(鄭洛中) 등 20여 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일본인 쿠리야마 츠루키치[栗山鶴吉]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전과를 올렸다.
나성화는 1909년에 일본군에 체포되었고, 1910년 6월 16일에 광주(光州)로 이송되던 중 일본군 두 명을 때려눕히고 탈출을 기도하다가 실패하여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나성화의 공훈을 기려 1986년에 건국 포장을, 199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