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0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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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致洪 |
이칭/별칭 | 김치홍(金致弘),김동필(金東弼)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윤미 |
출생 시기/일시 | 1880년 3월 - 김치홍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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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08년 10월 - 김치홍 심남일 의병진에 가담하여 기군장에 선임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1월 - 김치홍, 박민홍 의병 부대의 제1초십장에 임명됨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4월 - 김치홍, 박사화 의병 부대의 제1초십장에 임명됨 |
활동 시기/일시 | 1909년 9월 - 김치홍 영산포 일본 헌병대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10년 6월 13일 - 김치홍 광주 지방 재판소에서 폭동 및 살인·강도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음 |
몰년 시기/일시 | 1910년 7월 31일 - 김치홍 순국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김치홍, 건국 훈장 독립장 추서 |
출생지 | 김치홍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흥리 |
성격 | 의병 |
성별 | 남 |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의병.
[개설]
김치홍(金致洪)[1880~1910]은 영암 출신으로, 활동 당시 영암 신흥리 1003번지에 거주하고 있었다. 1908년부터 1910년까지 심남일(沈南一), 박민홍(朴民洪), 박사화(朴士化) 의병 부대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김치홍(金致弘), 김동필(金東弼)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였다.
[활동 사항]
김치홍은 1908년 10월 심남일 의병진에 가담하여 기군장(起軍將)에 선임되었다. 약 60여 명의 동료들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영광(靈光)·능주(綾州) 일대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9년 1월에는 박민홍 의병 부대의 제1초십장(第一哨什長)에 임명되어 총기 15정을 갖추고 부하 30여 명을 인솔하여 나주(羅州) 일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9년 4월에는 박사화 부대의 제1초십장에 임명되어 총기 12정으로 무장한 부하 26명을 거느리고 영암 일대에서 역시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하던 중 1909년 9월에 영산포(榮山浦) 일본 헌병대에 체포되었다.
김치홍은 1910년 6월 13일에 광주 지방 재판소에서 폭동 및 살인·강도죄로 교수형을 언도받았으며, 1910년 7월 23일 대구 공소원에서 공소가 기각되어 교수형을 당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김치홍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 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