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48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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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비짜락,비짜루,비짜리,비찌락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물품·도구/물품·도구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이명헌 |
[정의]
살림집에서 먼지나 쓰레기를 쓸어내는 데에 쓰이는 청소 도구.
[개설]
비 는 먼지나 쓰레기를 쓸어내는 살림 도구의 하나이다. 비의 옛말은 뷔이며, 지역에 따라서는 비짜락·비짜루·비짜리 따위로 부르고 있으나 영암 지역에서는 비찌락이라 부른다.
만드는 모양도 여러 가지이고 재료 또한 다양해서 짚·띠·싸리·수수·소나무뿌리털·동물 꼬리털·청올치·대[竹] 등으로 만든다. 그래서 재료에 따라 장목수수비·장목비·댑싸리비·개꼬리비·청올치비·솔뿌리비·띠비·개꼬리비·소나무뿌리털비 따위의 이름이 있다. 또 쓰이는 용도에 따라서도 방비·마당비·부엌비 등으로 구분된다.
이러한 비는 비틀을 이용해 만든다. 비틀은 비를 단단히 동여서 맬 때 도구로 쓰이는 끈을 가리켜 이르는 말이다. 흔히 ‘비틀’이라 부르지만, 『민족 생활어 사전』에서는 ‘조르개끈’이라고 표현했다. 틀이란 ‘간단한 구조로 된 기계나 장치’의 뜻이 담겨 있기 때문에, ‘비틀’이라기보다는 ‘조르개끈’이나 또는 ‘비맬끈’이라고 명칭을 바꿔 표현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일 것 같다.
[연원 및 변천]
비 의 기원은 초기 철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는 광주광역시 신창동 저습지 유적에서 빗자루를 비롯한 새끼 등 근대·현대 농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구(民具)와 유사한 유물들이 다량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유적은 초기 철기 시대 말에서 원삼국 시대에 이르는 시기의 여러 유구가 복합된 거대한 유적으로, 당시의 생활 문화를 복원하는 데 귀중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나일론 섬유나 플라스틱 재질의 빗자루 및 진공청소기 등이 보급되면서 비의 사용 빈도가 갈수록 줄어들어 옛 방식에 의한 비 제작이 이루어지 않기 때문에 예전의 비는 이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게 되었다.
[형태]
영암 지역에서 주로 사용했던 비의 재료는 볏짚목과 수수 또는 싸리와 대를 이용했다. 볏짚목은 방비, 수수는 부엌비, 싸리나 대는 주로 마당비의 재료로 쓰였다. 크기는 일정하지 않지만 방비와 부엌비의 경우는 대체로 손잡이 부분이 한 손으로 쥘 수 있을 정도로 둥근 일자형이며, 밑 부분은 부채를 펴놓은 것 같은데 전체적인 형태는 L자형이다. 그리고 마당비는 싸리나 대나무 가지를 한 움큼 가지런히 모아 그 속에 손잡이로 쓰일 긴 대를 박아 넣고 이것이 빠지지 않도록 서너 군데를 단단히 묶었는데 요즘도 흔히 볼 수 있는 대비의 형태이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우리 민담에는 부엌비가 도깨비로 변하는 내용의 것이 많다. 도깨비를 잡아서 묶어놓고 이튿날 보면 비에 피가 묻어 있더라는 따위의 이야기는 어떤 농촌에나 퍼져 있다. 이것은 부엌에서 여인네가 비를 깔고 앉아 일하는 경우, 이때 달거리가 묻는 것을 경계하기 위한 것으로 여겨진다.
또, 부엌비의 주요 재료였던 수수는 민속신앙의 소재로 쓰였는데, 색이 붉어 아이들의 돌 때 못된 귀신을 막아 준다고 하여 붉은 수수팥떡을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수수대로 빗자루를 만들었던 것도 그 비로 쓰레기에 숨어 있을 잡귀를 쓸어내려고 했던 게 아닌가 싶다.
우리 속담에 “가을마당에 빗자루 몽당이를 들고 춤을 추어도 농사 밑이 어둑하다.”라는 말이 있다. 이는 가을에 타작을 끝낸 후 줄 것을 주고 갚을 것을 갚고 나니 빈손이 된 듯해도 그래도 어딘가에 먹을 것이 남아 있다는 뜻으로, 그만큼 농사일은 실속 있고 든든한 것이라는 생각이 깃들어 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