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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462
한자 風具
이칭/별칭 풍고,풍로,풀무,품구,풍차(風車)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물품·도구/물품·도구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명헌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농기구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에서 곡물에 섞인 쭉정이나 먼지 등을 날리는 데 쓰는 기구.

[개설]

풍구 는 곡물 속에 들어 있는 쭉정이·겨·피·풀씨·먼지 등을 제거하는 구실을 하는 기구다. 즉 풍구의 둥근 통 속에 장치한 날개를 돌려 일으킨 바람으로 곡식에 섞여 있는 이물질을 제거하는 데 쓰였다. 둥근 나무 통 안에 여러 개의 날개가 달린 축을 장치하고 이것을 밖에서 돌리면 큰 바람이 나게 되어 있는 것이 작동 원리이다. 위에는 깔때기 모양으로 된 아가리가 따로 있어 축을 돌리면서 이곳에 곡식을 부으면 흘러 내려가면서 바람에 의해 겉껍질이나 검부러기는 자연스럽게 옆으로 빠져나가고 싸라기는 중간쯤에서 떨어지며, 온 낟알은 가장 가까운 통로로 떨어져 내려온다. 보통 풍구로 한 시간에 벼 15~20가마를 선별할 수 있다.

[연원 및 변천]

풍구 는 지역에 따라 풍고·풍로·풀무·품구·풍차(風車)로도 불린다. 이 중 전남 영암 지역에서는 풍구를 풍로라고 부른다. 옛 기록을 살펴보면, 『북학의(北學議)』, 『과농소초(課農小抄)』, 『해동농서(海東農書)』, 『임원 경제지(林園經濟志)』에는 풍구를 양선(颺扇)이라 기록하였고, 『방언 유석(方言類釋)』, 『물보(物譜)』, 『사유 박해(事類博解)』에는 선차(扇車)로, 『농정촬요(農政撮要)』에는 풍선차(風扇車)로 기록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보아 풍구는 18세기 이전까지는 우리나라에서 사용되지 않은 듯하다. 또 박지원은 『과농소초』에서 부뚜의 불합리성을 설명한 끝에 “내가 경상도에서 고을살이를 할 때 풍구를 만들어 시험해 보았더니, 어린아이 하나가 이에 기대서서 발판을 약간 밟아도 100섬이나 되는 낟알을 하루에 다 부칠 수 있었다.”라고 주장하며 중국의 농가에는 이것이 집집마다 있으나, 우리는 이의 사용을 꺼린다고 개탄하였다.

이 기록에 의하면 당시의 풍구 중에는 손으로 돌릴 뿐 아니라 발로 밟아서 날개 장치가 돌아가게 한 것도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근년에는 풍구를 돌리기가 힘이 들기 때문에 전동기를 달아 돌리기도 하고, 또 바람개비를 더 능률적으로 개량하여 크기를 작게 만든 철제 풍구가 농가에 많이 보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영암 지역에서도 지금은 탈곡 시에 위와 같은 과정을 모두 거쳐 깨끗하게 되어 나오므로 풍구를 사용하는 일이 별로 없다.

[형태]

풍구 는 공기의 기류를 이용하여 곡물을 선별하는 기구로 비교적 근대적인 기계 기구의 구조를 갖추었다. 회전 지름이 50~100㎝ 되는 일종의 송풍기[바람개비]를 설치하고 바람이 배출되는 입구에 곡물을 낙하시켜 협잡물을 선별하는 방식이다. 따라서 풍구는 송풍 장치, 곡물 투입부, 투입량 조절 장치, 곡물 배출구, 검불 배출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바람개비의 날개는 4장이 보통이고 얇은 나무판자로 만들었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영암 지역에서는 풍구로 한 시간에 벼 15~20가마를 선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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