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41
한자 林永化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4년연표보기 - 임영화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임영화 나성화 의병 부대 장포의 직임을 맡음
활동 시기/일시 1909년 7월 - 임영화 군사들과 함께 전남 무안부 삼향면에서 활동
몰년 시기/일시 1910년 6월연표보기
추모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임영화,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임영화(林永化)[1884~1910]는 전라남도 나주 출신으로, 1909년 나성화(羅成化) 의병 부대에 참여하여 전라남도 나주, 무안, 영암, 남평 등지에서 활동하다가 교수형을 받고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임영화나성화 의병 부대에 소속되어 장포(長砲)의 직임을 맡아 대일 항쟁의 선봉에 섰다. 1909년 7월 군사들과 함께 전남 무안부(務安府) 삼향면(三鄕面)에서 일본인 쿠리야마 츠루키치[栗山鶴吉]를 처단하고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다 일제가 한국 병탄을 위해 대규모의 병력을 투입하여 ‘남한 대토벌 작전’을 전개하자 임영화는 후일의 재기를 기약하며 자수하였다.

임영화는 1910년 4월 12일 대구 공소원에서 폭동, 살상 등의 죄목으로 교수형을 언도받고 상고하였으나, 5월 16일 고등 법원에서 교수형이 확정되어 형 집행으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임영화의 공훈을 기려 200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