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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26
한자 朴壽奉
이칭/별칭 박한기(朴漢己),박한동(朴漢東)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09년 8월 6일연표보기 - 박수봉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2년 6월 - 박수봉 영암군 덕진면 소작 쟁의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32년 - 박수봉 광주 지방 법원 목포 지청에서 징역 8개월을 언도받음
몰년 시기/일시 1948년 2월 17일연표보기 - 박수봉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박수봉, 대통령 표창 추서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박수봉(朴壽奉)[1909~1948]은 영암 출신으로, 본적과 활동지는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德津面)이다. 1932년 덕진면에서 발생한 소작 쟁의에 참여하여,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수봉박한기(朴漢己), 박한동(朴漢東)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도 하였다.

[활동 사항]

1930년대 초 영암군 덕진면에는 야학이 개설되어 일제 식민 통치 제도의 모순과 조국 독립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지역 사회에 폭넓게 형성되어 있었다. 이는 지주의 자의적인 소작권 이전 횡포와 고율의 소작료로 인해 고통 받는 소작 농민들의 현실 문제에 주목하여 일제 식민 통치 구조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지주와 소작 관계를 타파해야 한다는 인식으로 확산되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박수봉은 1932년 김판권(金判權)·최판옥(崔判玉) 등이 주도한 소작 쟁의 활동에 참여하였다. 1932년 3월 박수봉은 여러 동지들과 함께 덕진면 운암리(雲岩里) 지역 지주들의 소작권 이전 횡포에 항거해, 운암리 청년 회관에서 청년회원 수십 명을 모아 소작권 이전 방지 대책에 관한 협의를 하였다. 이어 1932년 6월에는 덕진면 영보리 영보정(永保亭)에서 박수봉을 비롯한 청년회원 수십 명이 모여 소작권 이전 방지 대책을 협의한 뒤, 덕진면 운암리백계리(栢溪里) 방면의 신구(新舊) 소작인 집으로 몰려가가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을 꾸짖고 노동가를 부르며 시위행진을 하는 등 기세를 올렸다.

박수봉은 이 일로 인하여 일경에 체포되었고, 1933년 9월 29일 광주 지방 법원 목포 지청에서 징역 8개월을 언도받았으나 미결 기간을 포함해 1년 3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박수봉의 공훈을 기려 2000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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