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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09
한자 鄭鶴順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2년 9월 1일연표보기 - 정학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10일 - 정학순 영암 독립 만세 운동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15일 - 정학순 광주 지방 법원 장흥 지청에서 징역 1년형 언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6월 27일 - 정학순 대구 복심 법원에서 항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름
몰년 시기/일시 1950년 10월 21일연표보기 - 정학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0년연표보기 - 정학순,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정학순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성양리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정학순(鄭鶴順)[1892~1950]은 영암 출신으로, 본적 및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군서면(郡西面) 성양리(省陽里)이다. 1919년 영암 지역 독립 만세 운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정학순은 1919년 3·1 운동 당시 구림리(鳩林里)에 거주하는 최한오(崔漢五)·조병식(曺秉植)·박규상(朴奎相) 등과 서로 연락하여 영암읍내와 구림리에서 동시에 독립 만세 운동을 일으키기로 계획하였다. 그해 4월 10일 이른 아침에 독립 선언서가 읍내 각 집에 배포되었고, 손에 태극기를 든 학생과 시민들이 회사정(會社亭) 광장에 모여들었다. 이날 장터에 모인 장꾼들도 이에 호응하여 시위 군중은 1천여 명에 이르렀다. 정학순은 앞장서서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

정학순은 1919년 5월 15일 광주 지방 법원 장흥 지청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언도받고 상고하였으나, 6월 27일 대구 복심 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정학순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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