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007 |
---|---|
한자 | 河誼喆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 137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윤미 |
출생 시기/일시 | 1907년 11월 15일 - 하의철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27년 - 하의철 성진회 활동 |
활동 시기/일시 | 1928년 3월 - 하의철 영암 서창 보통학교 교사로 재직 |
활동 시기/일시 | 1929년 11월 3일 - 하의철 일경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31년 6월 - 하의철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름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하의철 대통령 표창을 추서 |
몰년 시기/일시 | 1980년 4월 10일 - 하의철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하의철, 건국 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하의철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채지리 137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하의철(河誼喆)[1907~1980]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은 영암군 미암면(美岩面) 채지(採芝) 마을이고,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광주시(光州市) 서구(西區) 양동(良洞)이었다. 광주 지역의 학생 비밀 결사 성진회(醒進會)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하의철은 광주 사범 학교 3학년 재학 시절에 광주 지역의 중심적 항일 학생 비밀 결사인 성진회 회원으로 활동하였다. 1927년 3월에 성진회가 형식상 해체된 후에도 각 학교 단위로 항일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8년 2월에 각 학교 학생 지도자 12인과 함께 광주 서방면(瑞坊面) 두암리(斗岩里) 소재 지용수(池龍洙)의 집에 모여 졸업 후 항일 운동의 방안에 관하여 협의하고, 사회에 나아가서도 성진회의 사업을 계속하기로 결의하였다. 1928년 3월 광주 사범 학교를 졸업한 후 고향인 영암의 서창 보통학교(西倉普通學校) 교사로 재직하면서 광주 사범 학교 독서회 활동을 계속하였다.
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독립운동이 일어나자 하의철은 성진회 사건에 연루되어 일경에 체포되었고, 1930년 10월에 광주 지방 법원에서 치안 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은 뒤 1931년 6월에 대구 복심 법원에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하의철의 공훈을 기려 1977년에 대통령 표창을, 1990년에 건국 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