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73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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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작품/민요와 무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집필자 | 이윤선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2004년 - 「방아 타령」, 『영암의 민요』에 사설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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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록지 | 「방아 타령」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2구 방축 마을 |
채록지 | 「방아 타령」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2구 방축 마을 |
채록지 | 「방아 타령」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고삼 마을 |
채록지 | 「방아 타령」 - 전라남도 영암군 시종면 신학리 정동 마을 |
성격 | 민요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에서 주로 여성들이 방아를 찧으며 부르던 민요.
[개설]
영암군에서도 디딜방아나 절구를 찧으며 「방아 타령」을 불렀다. 「방아 타령」은 노동요의 일종이지만, 사실상 유희요에 가깝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성적인 상황을 비유하거나 모사하는 가사를 통해 익살맞고 풍자적인 생활상들을 노랫말 속에 펼침으로써 유희요의 특징을 더하기 때문이다.
[채록/수집 상황]
이명순[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2구 방축 마을]과 조금래[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2구 방축 마을, 1932년생, 여], 김후심[영암군 군서면 동구림리 고삼 마을, 1910년생, 여], 이순임[영암군 시종면 신학리 정동 마을, 1923생, 여]의 창이 문화재 전문 위원인 이소라에 의해 채록되어 『영암의 민요』에 그 사설이 수록되었다.
[내용]
디딜방아 나 절구로 보리나 쌀 등 곡식을 찧는 일을 소재로 하고 있다. ‘강태공의 조작방아’는 방아 찧는 노래에 즐겨 쓰이는 소재이다. ‘어이 유와 방애요’류는 판소리에도 종종 삽입이 된다. 영암군 시종면 신연리 방축 마을 이명순의 창은 아래와 같다.
(방애)야 방애야 어야 방애 잘 찧는다/ 얼거덩 절거덩 잘 찧는다/ 방애야 방애야 방애-야 쿵쿵 찧는 방아야/ 밤에로는 천석 찧고 낮이로는 만석 찧여 이 쌀을 찧여다/ 엇다 바치까/ 우리 군사 다 메긴다 해야제
시종면 신연리 방축 마을 조금래의 창은 아래와 같다.
방아야 방아야 방아야/ 장(강)-태공-이 조작방에/ 이 방아를 찧여서 천 석 짓고 만 석 지여/ 우리 대한 대한민국 군사들을 다 메기세
군서면 동구림리 고삼 마을 김후심의 창은 아래와 같다.
어이 유와 방애요/ 어이 유와 방애요/ 떨꺼덩 떵 떵 찧는 방에/ 어 유 와 방에요/ 사람을 기릿던가두 가래가 쩍 벌어졌구나/ 어 유와 방애요/ 점심때가 늦어간다/ 어 유와 방애요/ 이 방애를 찧고 와서/ 골목골목 당김시로/ 점심을 얻어 먹세
시종면 신학리 정동 마을 이순임의 창은 아래과 같다.
방아야 방아야/ 허 허유 방아야/ 강태공이 조작방에/ 한 섬 두 섬 찧어내여/ 은행 같은 쌀을 찧네/ 어서 바삐 찧고 가세/ 갓난 애기 젖슬 주고/ 우리 서방님 지달리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전통 시대에는 디딜방아, 절구를 찧으며 노동의 시름을 달래면서도 박자에 맞추어 일을 함으로써 작업의 효율을 높이던 노동요로 「방아 타령」을 애창하였다. 그러나 농기구가 기계화되면서 방아의 사용이 드물어진 근래에 이르러서는 노동요로서의 성격은 사라지고 일종의 여성 전유의 유희요로 부르게 되었다.
[현황]
현재는 전승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