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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근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1038
한자 李復根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79년연표보기 - 이복근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2월 - 이복근 박사화 의병 부대에 들어가 의병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09년 7월 - 이복근 친일 동장 김치수를 처단
몰년 시기/일시 1910년 4월연표보기 - 이복근 순국
추모 시기/일시 2000년연표보기 - 이복근, 건국 훈장 애국장 추서
성격 의병
성별

[정의]

개항기 전라남도 일대에서 활동한 의병.

[개설]

이복근(李復根)[1879~1910]은 영암 출신으로, 본적 및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곤일시면(昆一始面)이었다. 박사화(朴士化) 의병 부대 소속으로 항일 투쟁을 하였고, 1910년에 교수형을 당해 순국하였다.

[활동 사항]

이복근은 1908년 2월에 박사화 의병 부대에 들어가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박사화는 전라남도 함평(咸平)에서 의병을 일으킨 심남일(沈南一) 의병 부대에 참가하여 중군장(中軍將)으로 활약하다가, 이후 독자적으로 부대를 편성하여 능주(綾州)에서 일본군과 교전하는 등 1909년 가을까지 나주·영산포·영암 등지에서 15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대일 항전을 계속하였다.

이복근박사화 의병 부대에 소속되어 1909년 6월 나주군 욱곡면(郁谷面) 방축동(防築洞)에서 일본 헌병과 보조원 4명을 기습 공격하였고, 헌병 한 명에게 부상을 입히고 보조원 한 명을 사살하는 전공을 세웠다. 또한 1909년 7월에는 영암군 종남면(終南面) 화수동(花水洞)에서 친일 동장 김치수(金致水)를 처단하였으며, 지도군(智島郡) 압해면(押海面)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이후 박사화는 일본군에 체포되어 1910년 2월 19일 대구 공소원에서 폭동, 모살(謀殺) 등의 죄목으로 교수형을 언도받았다. 1910년 3월 29일 고등 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고, 4월에 형이 집행되어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복근의 공훈을 기려 2000년에 건국 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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