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024 |
---|---|
한자 | 崔圭哲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윤미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최규철(崔圭哲)[1913~1992]은 영암 출신으로, 활동 당시 주소는 영암군 덕진면(德津面) 영보리(永保里)이다. 1932년에 소작 쟁의를 주도하다 일경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활동 사항]
최규철은 1932년 3월 김판권(金判權)·최판옥(崔判玉) 등의 동지들과 함께 덕진면 운암리(雲岩里) 지역 지주들의 소작권 이전 횡포에 항거하여 운암리 청년 회관에 청년회원 수십 명을 모아 놓고 소작권 이전 방지 대책에 관한 협의를 하였다. 이어 6월에는 청년회원 수십 명을 모아 덕진면 영보리(永保里) 영보정(永保亭)에서 소작권 이전 방지에 관한 대책을 협의한 후, 운암리와 백계리(栢溪里) 방면의 신구(新舊) 소작인 집으로 몰려가 소작권 이전의 부당함을 꾸짖으며 소작인들을 구타하였다. 이후 최규철은 소작 쟁의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고 노동가를 부르며 시위 행진을 이끌었다.
최규철은 이 일로 인하여 일경에 체포되었고, 1933년 9월 29일 광주 지방 법원 목포 지청에서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았으나 미결 기간을 포함하면 약 1년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최규철의 공훈을 기려 2000년에 대통령 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