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101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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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鍾實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윤미 |
[정의]
일제 강점기 전라남도 영암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이종실(李鍾實)[1915~1948]은 전라남도 영암 출신으로, 본적은 영암군 도포면(都浦面) 성산리(聖山里)이다. 일제 말 학도병에 강제 징집되었다가 탈출하여 독립운동에 뜻을 두고 미국 정보 기관인 OSS(Office of Strategic Services)에서 훈련을 받았다.
[활동 사항]
이종실은 1945년 학병으로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미얀마 쿰(Kume) 전선에 배치되었으나, 같은 해 4월경 동료 박순동(朴順東) 등과 함께 탈출하여 당시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에 투항하였다. 이때 이종실 등은 대일 항전을 자청하였고, 이에 따라 인도 내에 있던 미군 OSS에 넘겨졌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헌신하기로 결심한 이종실은 같은 해 5월 OSS의 특수 공작인 ‘냅코 작전(Napko Project)’에 참여하였다. 냅코 작전은 미군의 한반도 침투 작전으로서, 이를 통해 미국이 한인들의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한다는 것을 전 세계에 알리고자 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대원들은 무기 조작법, 비무장 전투법, 지도 읽기, 파괴, 무전, 촬영, 낙하산 훈련, 비밀 먹 사용법, 선전, 일본인의 특성 등에 관한 특수 훈련을 받았다. 훈련이 끝나면 대원들은 각각 5~10명의 공작조로 나뉘어 서울, 평양과 같은 도시는 물론이고 농촌 지역 등 국내 각지에 침투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태평양 전쟁의 종전으로 참전의 뜻을 이루지는 못하였다.
이종실은 미군 포로 수용소 시절 『자유 한인보(自由韓人報)』를 발간하며 민족의식 고취에도 힘을 쏟았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종실의 공훈을 기려 1999년에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