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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950
한자 崔忠成
이칭/별칭 필경(弼卿),산당(山堂)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박선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458년 - 최충성 출생
활동 시기/일시 1487년 - 최충성, 김굉필·정여창의 제자가 됨
시기/일시 1488년연표보기 - 최충성, 영암에서 학문을 닦음
몰년 시기/일시 1491년 - 최충성 사망
추모 시기/일시 1665년 - 최충성 영암 녹동 서원에 배향
출생지 최충성 출생지 - 광주광역시
거주|이주지 최충성 거주지 - 전라남도 영암군
묘소|단소 최충성 묘소 - 전라남도 나주시 세지면 성산리
사당|배향지 녹동 서원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교동리 356지도보기
성격 문인
성별
본관 전주(全州)

[정의]

조선 전기 영암의 녹동 서원에 배향된 학자.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필경(弼卿), 호는 산당(山堂)이며 광주[현 광주광역시]에서 출생했다. 연촌(烟村) 최덕지(崔德之)[1384~1455]의 손자로, 아버지는 사용(司勇)[조선 시대 오위(五衛)의 정구품 군직] 최별(崔潎), 어머니는 밀양 박씨이다. 부인은 참의 이약수(李若水)의 딸인 전의 이씨이다.

[활동 사항]

최충성(崔忠成)[1458~1491]은 1487년(성종 18)에 김굉필(金宏弼)[1454~1504]의 문하로 들어가 『소학(小學)』을 배웠으며, 뒤에 정여창(鄭汝昌)[1450~1504]의 제자가 되었다. 김안국(金安國)[1478~1543], 남효온(南孝溫)[1454~1492]과는 동문(同門) 사이였다. 그리고 김종직(金宗直)[1431~1492]이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하자 글을 올려 불무(佛巫)의 폐단을 물리칠 것을 청하였다. 1488년에는 김건(金鍵) 등과 함께 전라도 영암에서 학문을 닦았다. 1489년 겨울에 중풍에 걸려 1491년에 34세의 나이로 숨을 거두었다.

[학문과 저술]

최충성의 저서로는 『산당집(山堂集)』 전 5권이 있다.

[묘소]

최충성의 묘소는 선산이 있는 전라남도 나주시 세지면 성산리 가지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65년(현종 6)에 영암의 녹동 서원(鹿洞書院)에 배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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