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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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壽恒 |
이칭/별칭 | 구지(久之),문곡(文谷),문충(文忠)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선미 |
출생 시기/일시 | 1629년 - 김수항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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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651년 - 김수항 알성 문과에 장원 급제 |
활동 시기/일시 | 1675년 - 김수항 좌의정에 임명됨 |
활동 시기/일시 | 1675년 - 김수항, 영암으로 유배 |
활동 시기/일시 | 1678년 - 김수항 철원으로 이배 |
활동 시기/일시 | 1680년 - 김수항 영중추부사로 복귀 |
활동 시기/일시 | 1680년 - 김수항 영의정에 임명됨 |
활동 시기/일시 | 1689년 - 김수항 진도로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689년 - 김수항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694년 - 김수항 신원·복권 |
추모 시기/일시 | 1886년 - 김수항 현종 묘정에 배향 |
유배|이배지 | 김수항 유배지 - 전라남도 영암군 |
유배|이배지 | 김수항 이배지 - 경기도 철원군 |
유배|이배지 | 김수항 유배지 - 전라남도 영암군 |
묘소|단소 | 김수항 묘소 -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 석천 마을 |
사당|배향지 | 녹동 서원 - 전라남도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
사당|배향지 | 봉암 서원 - 전라남도 진도군 지산면 안치리 |
사당|배향지 | 옥병 서원 -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주원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안동 |
대표 관직 | 이조 판서|영의정 |
[정의]
조선 후기 영암에 유배 온 문신.
[개설]
김수항(金壽恒)[1629~1689)은 조선 숙종(肅宗) 때의 문신이다. 서인으로서 2차례의 예송(禮訟) 때 남인과 대립했다. 1675년(숙종 1)에 남인인 윤휴(尹鑴), 허적(許積), 허목(許穆) 등의 공격으로 관직을 빼앗겨 전라도 영암에 유배되었다.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구지(久之), 호는 문곡(文谷)이다. 할아버지는 좌의정을 역임했던 김상헌(金尙憲),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김광찬(金光燦)이다. 어머니는 목사 김사(金瀉)의 딸이다. 형은 영의정을 지낸 김수흥(金壽興)이고, 아들은 김창집(金昌集)과 김창협(金昌協)이다.
[활동 사항]
김수항은 1651년(효종 2)에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성균관 전적(成均館典籍)으로 관직에 나아갔다. 이어 병조 좌랑·사헌지평(司憲持平)·사간원 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쳐, 1653년에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청나라에 다녀왔다. 1654년에 이조 정랑이 되었으며, 1655년에 형조 참의·승지·부제학 등을 지냈다. 1659년(현종 1)에 도승지·예조 참판·이조 참판을 지냈으며, 1662년에 왕의 특명으로 예조 판서에 발탁된 뒤 육조의 판서를 두루 거쳤다. 특히 이조 판서로 있을 때 명사들을 조정에 선임하기 위해 힘썼다.
김수항은 1674년 갑인 예송에서 서인이 패하여 당시 영의정이던 형 김수흥이 쫓겨나자, 이듬해인 1675년에 좌의정으로 임명되었다. 숙종 즉위 후 허적과 윤휴를 배척하고, 종실인 복창군(福昌君) 이정(李楨)과 복선군(福善君) 이남(李柟) 형제의 추문을 들어 그 처벌을 주장하다가 집권파인 남인의 미움을 받아 영암에 유배되었다. 1678년(숙종 4)에는 김수항의 유배지를 도성 가까운 곳으로 옮기려고 했으나 양사(兩司)의 반대로 철원으로 이배되었다.
1680년(숙종 6) 경신대출척(庚申大黜陟)이 일어나 남인들이 실각하자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로 복귀, 영의정이 되어 남인의 옥사를 주도하고 송시열과 박세채 등을 불러들였다. 그러나 1689년에 기사환국(己巳換局)이 일어나 남인이 재집권하자, 남인의 명사를 함부로 죽였다는 김방걸(金邦杰) 등의 탄핵을 받아 진도로 유배된 뒤에 사사되었다.
영암에 유배된 시기에 영암의 유력 사족인 전주 최씨 등과 교유가 깊었고, 밀양 김씨 김중명(金重鳴)이 세운 ‘송정(松亭)’을 왕께 헌납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학문과 저술]
송시열, 송준길(宋浚吉)과 종유(從遊)하였다. 특히 송시열이 가장 아끼던 후배로서, 한때 사림의 종주로 추대되었다. 저술로는 『문곡집(文谷集)』 전 28권과 「송강 행장(松江行狀)」 등이 있다. 현재 영암군 덕진면 영보리 목판각에 『문곡집』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묘소]
김수항의 묘는 경기도 남양주시 이패동 석천 마을에 있다.
[상훈과 추모]
1694년(숙종 20)에 신원·복관되었고, 1886년(고종 23)에는 현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영암의 녹동 서원(鹿洞書院), 진도의 봉암 서원(鳳巖書院), 포천의 옥병 서원(玉屛書院)에도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충(文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