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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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白振南 |
이칭/별칭 | 선명(善鳴),송호(松湖)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곽아람 |
[정의]
조선 시대 영암 출신의 서예가·시인.
[개설]
백진남(白振南)[1564~1618]은 문장과 필체가 매우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씨와 시를 사서 모을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가계]
본관은 해미(海美), 자는 선명(善鳴), 호는 송호(松湖)이다. 아버지는 최경창(崔慶昌)[1539~1583], 이달(李達)[1539~1618]과 더불어 삼당시인(三唐詩人) 가운데 한 사람인 옥봉(玉峯) 백광훈(白光勳)[1537~1582]이다.
[활동 사항]
백진남은 15세에 사학(四學)[조선 시대 중앙의 4부(部)에 설치한 관립 교육 기관]의 과시에서 시부(詩賦)에 뛰어난 자질을 보여 이이(李珥)[1536~1584]의 총애를 받았다. 1590년(선조 23)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정유재란 때 통제사 이순신(李舜臣)[1545~1598]의 진중으로 피란하여 머무를 당시 명나라 장수 계금피(季金皮)와 승덕(承德)이 백진남의 시초를 크게 칭찬하였다고 한다. 1606년 명나라 사신 주지번(朱之蕃)이 왔을 때 유근((柳根)[1549~1627]의 천거로 제술관이 되어 활동하였는데, 주지번은 백진남의 글씨를 보고 절세의 기보라고 절찬하였다. 백진남은 서울의 백악 아래에 살면서 김상헌(金尙憲), 조희일(趙希逸) 등과 교류하였으며, 송호(松湖)에 별장을 두고 지냈다.
[학문과 저술]
저서로는 『송호 유고(松湖遺稿)』 1권이 있다. 목활자본인 『송호 유고』는 1933년 후손 백수형(白受珩)이 편집하여 간행하였으며, 이중협(李重協)의 서문과 백형기(白亨璣)의 발문이 실려 있다. 『송호 유고』는 성균관 대학교 도서관과 연세 대학교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