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9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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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光植 |
이칭/별칭 | 대숙(戴肅),류광식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이성운 |
[정의]
고려 후기 영암 지역에 부임한 문신.
[개설]
유광식(柳光植)[?~1221]은 고려의 문신으로, 영암 수령으로 재임 시 청백하고 엄정하였다. 여러 차례 승진을 하다가 1221년(고려 고종 8) 문하시랑 동 중서문하 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로 있다가 벼슬을 사임하고 물러났다.
[가계]
본관은 전주(全州), 시호는 대숙(戴肅)이다. 둘째 할아버지는 수사공좌복사로 시호가 충신공(忠愼公)인 유신(柳伸)이고, 할아버지는 형부원외랑(刑部員外郞)으로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봉된 유덕문(柳德文)이다. 아버지는 합문지후(閤門祗候)를 지내고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에 추봉된 유영재(柳英材), 어머니 횡천군 대부인 조씨(橫川郡大夫人趙氏)는 합문지후(閤門祗候) 조시언(趙時彦)의 딸이다. 아들은 유유와 평장사를 지낸 유소(柳韶)이다.
[활동 사항]
유광식은 전주 출신으로, 국자감시(國子監試)에 급제한 뒤 음보(蔭補)로 양온서 영동정(良醞署令同正)이 되었다. 풍채가 우람하고 점잖았으며, 청렴하고 검소하였다. 영암 수령으로 재직할 때 정사를 청백하고 엄정하게 처리하였으므로 아전들은 무서워하고 백성들은 경애하였다.
유광식은 여러 차례 승직하여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었는데,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모두 치적(治績)을 올렸다. 1221년에 문하시랑 동 중서문하 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로 있던 중 나이 많아 벼슬을 사임하고 물러나 유유자적한 생활을 하였으므로, 사람들이 유광식을 장수와 부귀 두 가지를 다 구비한 사람이라고 일렀다.
유광식이 죽자 고종(高宗)은 삼 일간 조회를 정지하며 추도하였다.
[묘소]
봉황산 북쪽 기슭에 묘소와 비가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 어딘지 모른다. 최근 이 왕가 박물관에 있었던 묘지석 탁본이 연구 대상이 되고 있다.
[상훈과 추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