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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암고반재및소장고문서일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852
한자 靈巖考槃齋-所藏古文書一括
분야 종교/유교,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유적/건물,문헌/문서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은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작 시기/일시 1787년연표보기 - 영암 고반재 창건
보수|복원 시기/일시 1843년 - 영암 고반재 1차 중수
보수|복원 시기/일시 1936년 - 영암 고반재 2차 중수
보수|복원 시기/일시 1982년 - 영암 고반재 3차 중수
문화재 지정 일시 2001년 12월 13일연표보기 - 영암고반재및소장고문서일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6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영암고반재및소장고문서일괄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장처 영암고반재및소장고문서일괄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지도보기
성격 재실|고문서
소유자 밀양 김씨 문중
문화재 지정 번호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에 있는 조선 시대 재실과 소장되어 있는 고문서.

[개설]

고반재(考槃齋)밀양 김씨(密陽金氏)의 재실로서 해명재(海明齋) 또는 강명재(講明齋)라고도 한다. 1628년에 김홍발(金弘發)[1582~1643]이 노동 마을에 정착한 후 155년이 지난 1783년에 김치상(金致商)[1738~1797]이 창건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843년에 중수된 건물이다. 고반재밀양 김씨 문중 사우인 노동사의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위치]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노동 마을에 위치한다.

[형태]

고반재는 앞면 5칸, 옆면 2칸 규모로 앞면에 쪽마루를 두었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좌측과 우측에 각 1칸의 방과 중앙 3칸은 우물마루를 깔아 강학 공간으로 이용하였다. 고반재는 큼직한 자연석 초석을 둔 다음 원형 기둥을 세웠는데, 건물의 규모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큰 초석을 사용하였다.

[특징]

고반재밀양 김씨 문중 사우가 없던 시기에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 김견(金堅)[1565~1608]과 진무원종공신(振武原從功臣錄券) 김경발(金景發)[1597~1624], 그리고 문과 급제 후 개성 경력(開城經歷)을 역임한 김종환(金宗煥)[1814~1865]의 제사를 담당하고 후손에게 강학하던 곳이다. 1936년에 노동사(蘆洞祠)가 지어진 후에는 노동사의 강당으로 그 기능이 축소되었다.

고반재에 소장된 밀양 김씨의 고문서는 모두 41접으로 과거 시험 합격 증서인 홍패(紅牌)가 3건이 있고,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청용리 노동 마을에 정착한 김홍발의 후손들이 관직을 임명받은 교첩(敎牒)과 교지(敎旨)가 27건이 있다. 그중 임진왜란 시기에 발급받은 교첩 1건이 남아 있다. 공신녹권(功臣錄券)은 선무원종 공신녹권과 진무원종 공신녹권으로 2건이 있는데, 이는 고반재노동사에서 제사를 지내는 김견김경발의 것이다. 토지 매매 문서 1건은 1628년에 작성된 것으로 이를 통해 밀양 김씨가 정착하게 된 배경과 경제력을 볼 수 있다. 그 외 남아 있는 호적 문서 7건은 모두 19세기의 것이다.

[의의와 평가]

영암고반재및소장고문서일괄 을 통해 영암군 서호면에 정착한 밀양 김씨가 향촌에 정착하고 성장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 2001년 12월 13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3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전라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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