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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773
한자 慕孝齋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신지로 152-46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김희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787년 - 모효재 이건
개축|증축 시기/일시 1818년 - 모효재 중수[1818]
개축|증축 시기/일시 1886년 - 모효재 중수[1886]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6년 - 모효재 중수
현 소재지 모효재 -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신지로 152-46[용산리 193] 신흥 마을지도보기
성격 재실
양식 목조 와가 팔작지붕
정면 칸수 정면 4칸
측면 칸수 측면 2칸
소유자 하동 정씨 문중
관리자 하동 정씨 문중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신북면 용산리 신흥 마을에 있는 하동 정씨 문중의 재실.

[개설]

모효재(慕孝齋)는 처음 하동 정씨 정문손(鄭文孫)[1473~1554]의 사친(事親)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그가 초막을 짓고 시묘하던 곳에 향화각(香火閣)을 짓고 모효재라 불렀다. 1787년(정조 11)에 묘역 내에서 신흥 마을로 이건하였다.

정문손은 1507년(중종 2) 식년시[생원]에 입격하였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 정문손의 효행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데, “나주에 사는 생원 정문손은 아버지가 일찍 죽고 어머니를 섬김에 뜻을 살피어 순종하여 조금도 어기는 일이 없었다. 어머니의 나이가 90여 세에 항시 누워 있고 일어나지 않았었는데, 친히 변기(便器)를 처리하고 종을 시키지 않았으며, 어머니가 돌아간 뒤에는 정문손의 나이 70이 넘었으면서도 아침저녁의 상식을 몸소 거행하기를 게으름 없이 하고 쇠약해지고 병들었을 때도 일찍이 자제들에게 시키지 않았고, 여묘살이 3년 동안에 한 번도 집에 가지 않았다.”라고 한다. 이 같은 효행이 알려져 마을 이름을 모효동, 재실을 모효재라 하였다.

[위치]

영암군 신북면 소재지에서 동남쪽으로 2.5㎞ 거리에 있는 용산 마을 입구 삼거리로부터 금정면 쪽으로 200m쯤 가다가 좌측으로 가는재골을 따라 500m 거리의 나지막한 고개를 넘으면 골프장과 맞닿은 곳에 있다. 원래 조선 시대 나주목 지역이었는데 1906년에 영암으로 편입되었다. 나주시 세지면 성산리와 경계가 되는 지역이기도 하다.

[변천]

정문손의 어버이를 섬기는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들이 그가 초막을 짓고 시묘하던 곳에 향화각을 지어 ‘모효재’라 불렀다고 하나 처음 건립된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1787년(정조 11)에 묘역 내에서 이건하고 1818년(순조 18), 1886년(고종 23), 1916년에 세 차례 중수를 거친 뒤, 1971년에는 번와((翻瓦)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모효재의 상량기에 “개국 524년 을묘 11월 18일 기축 수주 26일 정유 오시 상량(開國五百二十四年乙卯十一月十八日己丑竪柱二十六日丁酉午時上樑)”이라고 표기되어 있어, 1916년의 중수 사실을 말해준다.

또한 1964년에는 솟을삼문을 건립하였다. 삼문의 상량기에 ‘단기 4297년 갑진 3월 초 10일 경자 입주동일 미시 상량(檀紀四千二百九十七年甲辰三月初十日庚子立柱同日未時上樑)’이라고 기록되어 있어 1964년[갑진년] 3월에 건립하였음을 알 수 있다.

[형태]

모효재 경역은 벽돌 담장으로 둘러져 있고, 솟을삼문을 들어서면 모효재가 있다. 규모는 정면 4칸, 측면 2칸이고 지붕은 골기와를 이은 팔작지붕 집이다. 중앙 2칸은 대청이고 좌우 2칸은 재실이다. 뒷면에는 대숲이 감싸고 있다.

모효재 편액은 단정하고 굳센 해서체이며 ‘상지 12년 병술 후손 나주 영장 순묵 근서(上之十二年丙戌後孫羅州營將淳黙謹書)’라는 관지(款識)가 있다. 모효재를 중수하는데 협력한 정순묵이 나주 영장으로 재임한 기록이 『일성록』에 있는데, 이 해가 병술년이므로 1886년(고종 23)에 쓴 것으로 보인다.

모효재의 기둥에는 주련(柱聯) 8개가 걸려 있으며, 편액 옆과 건물 내부에 민제호와 정순묵 등이 지은 시문(詩文)과 「모효재 중건기」, 「모효재 중수기」, 「모효재 중건 소서(小序)」, 서술(敍述), 출의기(出義記) 등의 현판 13개가 걸려 있다. 한편 모효재에서는 출판 활동도 하여, 1925년에는 정도국(鄭道國) 주도로 『하동 정씨 세보(河東鄭氏世譜)』를 간행하기도 하였다.

[현황]

모효재는 골프장과 잇대어 있으며, 앞의 관리사 건물로 보이는 슬래브 1층 건물과 함께 철조망으로 둘러싸여 있다. 하동 정씨 문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관리사가 따로 있어 관리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지만 일부 벽체에서 박락 현상이 보인다.

[의의와 평가]

하동 정씨 정문손의 재실로 효를 근간으로 한 조선 시대의 정신 문화유산이며 향촌사를 알려 준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0.06.03 오류 수정 [개설] 정문손(鄭文孫)[1437~1554]->정문손(鄭文孫)[1473~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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