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6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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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河大斗不忘碑 |
이칭/별칭 | 행의관 하 공 대두 덕혜 불망비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 47-7번지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탁현진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882년 10월 7일 - 하대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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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928년 - 하대두 불망비 건립 |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 1936년 - 하대두 사망 |
이전 시기/일시 | 2000년대 - 하대두 불망비 이전 |
현 소재지 | 하대두 불망비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 47-7번지 |
원소재지 | 하대두 불망비 -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대신리 569-1 |
출생지 | 하대두 출생지 - 전라남도 영암군 군시면 남내리 |
성격 | 비 |
관련 인물 | 하대두 |
재질 | 돌 |
크기(높이,너비,두께) | 145㎝[높이]|43.5㎝[너비]|21㎝[두께] |
소유자 | 영암읍사무소 |
관리자 | 영암읍사무소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영암읍 동무리에 있는, 1928년 하대두가 영암 군민을 구휼한 공을 기념하기위해 세운 비.
[개설]
하대두(河大斗)는 일제 강점기 영암의 대표적인 지주로 1882년 10월 7일 영암군 군시면(郡始面) 남내리(南內里)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주, 호참(戶參) 하서오(河書五)의 증손이고, 동중추(同中樞) 하개봉(河鎧鳳)의 손자이다.
하대두는 1911년 조선 총독부에서 목배(木杯)를 하사받았다. 1913년 적십자사와 생명 조합 사원, 1931년 소화 전기의 감사를 지냈다. 1948년 농지 개혁 당시에는 논 2,132,231㎡[215정보(町步)], 밭 128,925㎡[13정보], 대지 406,611㎡[41정보]를 가진 대지주였다. 또한 하대두 불망비(河大斗 不忘碑)는 ‘행의관 하 공 대두 덕혜 불망비’로도 불린다.
[건립 경위]
하대두 불망비는 1928년 영암 지역에 흉년이 들었을 때 영암 군민들을 구휼하였으므로, 이를 기념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비문은 문종(文鐘)이 썼다.
[위치]
2013년 현재 영암읍 동무리 영암읍사무소 앞에 있다.
[형태]
불망비의 높이는 130㎝이며 너비 51㎝, 두께 21㎝이다.
[금석문]
하대두 불망비의 전면 중앙에는 ‘행의관 하 공 대두 덕혜 불망비(行議官河公大斗德惠不忘碑)’라 적혀 있다. 그 사이로는 ‘명○귀중 거적주백(名○貴重 居積周白)’, ‘옥곡풍○ 흥창독황(玉穀豊○ 興昌獨黃)’, ‘○김○혜 기적우석(○金○惠 記蹟于石)’ ‘봉화생광 영언불망(奉火生光 永言不忘)’라고 적혀 있다.
후면에는 하대두의 행적이 적혀 있으나 마모가 심해 판독이 어려우며, ‘소화 3년 무진 6월(昭和三年戊辰六月)’이라 적혀 있어 1928년 6월에 비가 건립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황]
현재는 영암읍사무소에 다른 비들과 함께 세워져 있다. 대리석을 이용해 울타리를 만들어 놓았으나, 노상에 있어 비나 바람 등에 의한 훼손이 우려된다.
[의의와 평가]
하대두 불망비는 일제 강점기 영암의 대표적인 지주였던 하대두를 기리는 비로, 영암 군민을 구휼한 하대두의 공덕은 큰 귀감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