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6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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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仙皇山城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터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당리 마을 |
집필자 | 고용규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86년 - 선황산성 터, 목포 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 시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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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선황산성 터 -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당리 마을 선황산 |
성격 | 산성 터 |
지정 면적 | 540m[둘레]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선황산에 있는 산성 터.
[개설]
영암군(靈巖郡) 미암면(美岩面)을 비롯하여 학산면·서호면 지역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현(縣)이 설치되어 운영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백제 때 고미현(古彌縣)이었다가 통일 신라 때인 757년(경덕왕 16)에 곤미현(昆湄縣)으로 이름이 바뀌고 반남군(潘南郡)에 속하였다. 고려 시대에 들어와 1080년(문종 34) 이래 계속 영암군에 속하였다. 조선 후기 곤일시면(昆一始面)으로 개편된 후 1928년에 다시 미암면으로 이름이 바뀌어 2013년 현재에 이르고 있다. 특히 선황리 일대는 옛 고미현과 곤미현의 치소(治所)로 비정되고 있기 때문에 선황산성(仙皇山城)은 그 중심부에 분포하고 있는 산성으로 주목되고 있다.
[변천]
『조선 보물 고적 조사 자료(朝鮮寶物古跡調査資料)』에 따르면, “선황산에 있는 둘레 약 300칸[間]의 석루(石壘)로서 곳곳이 붕괴되어 있다.”라고 선황산성에 대해 밝히고 있다. 또한 고미현의 치소로 비정되는 지금의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에는 선황산[181.8m]의 정상부에 위치한 선황산성과 선황산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능선의 말단 정상부에 위치한 성산성 등 두 개의 산성이 있는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 외에 선황산성과 관련된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 않고, 산성의 유구(遺構)도 전혀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선황산성의 정확한 축조 시기 및 배경은 확인할 수 없다.
[위치]
선황산성 터는 전라남도 영암군 미암면 선황리 당리 마을 선황산 정상에 있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선황산성 터는 1986년에 목포 대학교 박물관의 지표 조사 때 존재가 확인되었고, 1999년에 목포 대학교 박물관에서 『문화 유적 분포 지도』를 작성할 때 다시 확인되었다.
[현황]
선황산성 성벽의 둘레는 약 540m로서 테뫼식[봉우리를 둘러쌓아 성을 축조하는 방법]의 석축(石築) 산성으로 추정되지만 현재까지 선황산성의 유구는 전혀 확인되고 있지 않다. 한편 선황산은 해남만을 비롯하여 사방이 한눈에 조망되는 요충지를 이루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선황산성의 정확한 축조 시기나 사용 시기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일제 강점기의 조사 기록이 확인되고 있기 때문에 추후 정밀 조사를 요한다. 조사 기록대로 선황산에 산성이 있었다면 영암군 삼호면·미암면의 삼호 반도와 해남군 산이면·마산면의 산이 반도 사이에 형성된 해남만 가장 안쪽의 북쪽에 선황산성이 위치하는 점으로 보아, 해남만을 오가는 해상 교통로를 감시·통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백제 때 고미현, 통일 신라부터 고려 때까지 곤미현의 치소로 비정되고 있는 선황리에 선황산성이 분포하고 있는 점도 주목되는 부분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