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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400457
한자 甫吉島
분야 지리/자연 지리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전라남도 영암군
집필자 정윤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1694년 - 보길도 영암군 관할로 편제
개정 시기/일시 1896년 2월 3일연표보기 - 보길도, 완도군 보길면으로 행정 구역 이관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92년 1월 21일 - 보길도 윤선도 유적 사적 제368호로 지정
관할 지역 보길도 -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

[정의]

조선 시대에 전라도 영암군에 속했던 서남해 지역의 섬.

[개설]

현재 보길도는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에 속해 있으며, 북쪽으로는 전라남도 남단의 장흥군·강진군·해남군과 접하고 동쪽으로 고흥군, 서쪽으로는 진도군과 가깝다. 보길도는 고려 시대 현종 이래로 영암군에 소속되어 있던 섬이다. 윤선도(尹善道) 관련 유적과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쓴 바위 등의 문화 유적이 있으며, 다도해 해상 국립 공원 지역으로 자연 경관이 수려하고 천연기념물 제40호인 완도 예송리 상록수림과 예송리 몽돌 해수욕장 등 볼거리도 많은 곳이다.

[관련 기록]

지리지 가운데 보길도에 대한 가장 이른 기록은 1481년 완성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으로, 둘레 63리[24.74㎞]이며 영암에 속한 24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에는 ‘보길도’라는 지명이 총 32건 정도 기록되어 있다. 그중에서 가장 이른 것은 1448년(세종 30) 8월 27일 의정부에서 소나무에 관한 감독 관리에 대하여 상신한 기록에 등장한다. 이후의 기록은 주로 보길도에 무관 벼슬인 만호(萬戶)를 설치한 일과 왜적 관련 내용들이다. 이 밖에 1748년 윤선도의 5대손인 윤위(尹偉)가 지은 「보길도지(甫吉島識)」라는 글이 있다. 이 글에는 “보길도에는 사람들이 적어서 벼랑 위나 암석에 의지하여 열 집 정도가 살고 있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내용]

보길도의 지명과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하여 온다. 옛날 영암의 한 부자가 선친의 묏자리를 잡으려고 풍수지리에 능한 지관을 불렀는데, 지관이 이 섬을 두루 살핀 뒤 ‘십용십일구(十用十一口)’라는 글을 남기고 갔다. 이 글의 뜻을 풀고자 어느 중에게 물으니 섬 내에 명당자리가 11구 있는데 10구는 이미 사용되었고 나머지 1구도 이미 쓸 사람이 정해졌다고 풀고는, 지관이 남긴 글자들을 조합하여 ‘보길(甫吉)’이라 불렀다고 한다.

1637년 윤선도가 이곳에 은둔하면서 세연정(洗然亭)을 조성하고 많은 가사 작품을 남겼다. 현재 보길도 윤선도 유적은 1992년 1월 21일 사적 제36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한편, 보길도는 지리적 위치상 제주도로 가는 해로와 관련성이 많다. 백도리에는 1689년 송시열이 제주도로 귀양을 가다가 이곳에 머물면서 시를 지어 새겼다는 ‘글쓴 바위[刻字唵]’가 남아 있다. 제주에서 실려 온 말들이 보길도에서 쉬었다는 전설도 전한다.

[변천]

현재 전라남도 완도군에 속한 도서들은 조선 시기에는 인접한 해남·강진·장흥·영암 지역에 부속된 것으로 행정 구역이 편제되어 있었는데, 보길도는 영암군의 부속 도서로 관리되어 왔다. 1694년 이후 영암군 관할에 속하여 매년 조세를 징수하여 오다가 1870년(고종 7)에 면민들의 진원으로 방진(防鎭)을 설치하여 삼도진(三道鎭)이라 칭하였다.

1896년 2월 3일 고종이 섬으로 이루어진 완도군을 별도로 신설하면서, 관할 행정 구역이 이관되어 완도군 보길면이 되었다. 광복 후에 보길면은 노화면으로 통합되었다가, 1986년 보길면으로 다시 승격·분리되어 전라남도 완도군 보길면으로 현재에 이르고 있다. 현재 인접한 노화도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으며, 매년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명소로 발전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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