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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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海倉 |
이칭/별칭 | 원해창,군서 해창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408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변남주 |
관할 지역 | N 34° 48′59.4″, E 126° 41′10.6″[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40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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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에 있었던 조선 후기의 세곡 창고.
[개설]
영암군 군서 해창은 별칭 원해창 마을이라고도 한다. 조선 후기에 영암군 일대에서 생산된 대동미 등 세곡을 해창에 모았다가 배에 싣고 한양으로 출발한 곳이다. 그런데 이전의 해창은 영암읍 망호리 배널리[부춘동] 마을에 있었으나 19세기 무렵 망호리의 뱃길이 토사의 퇴적으로 어려워지자 군서면으로 옮기게 되었다. 조선 말에는 도포를 건너가는 나루가 설치되었고, 1960년 무렵에서 1970년대 초반까지 목포를 오가는 여객선이 다니기도 하였다. 1965년 해창 대교가 건설되고,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막아지면서 뱃길이 모두 차단되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조선시대 각 고을에는 그 지역에서 생산되는 물품과 징세된 현물들을 보관·관리하기 위한 시설인 창고가 설치 운영되었다.
[관련 기록]
영암군 군서면 해창리 408의 북쪽이 포구였다. 조선 시대 해창의 위치는 『대동지지(大東地志)』에서 “해창은 서쪽 15리[5.89㎞]에 있다.”라고 하였다. 지금의 영암군 군서면 해창 마을은 영암읍에서 서쪽으로 직선 약 5㎞가 되므로 기록과 일치한다. 당시 해창은 『1872년 지방 지도』에 기와집으로 그려져 있다.
[변천]
군서 해창은 19세기 무렵 망호리에서 옮겨왔다. 조선 말에 해창에는 나루가 설치되었는데, 해창 마을에서 소섬[牛島] 남단을 거쳐 도포면을 왕래하였다. 일제 초기에 해창 제방이 만들어졌으나 중앙은 터놓은 상태에서 나룻배가 다녔다. 1970년대 초반까지 목포를 왕복하는 여객선이 하루 2회 운항했는데, 약 두 시간 반이 소요되었다. 여객선은 1962년부터 영암호, 1965년부터는 진풍호가 이어받아 운항했으며, 인진호[13t급]는 1968년 9월부터 운항했다. 이는 당시 영암에서 목포를 왕래하는 방법 중 가장 편리한 교통편이었다. 나룻배는 썰물 시 목포행 여객선의 종선으로 이용하기도 하였다.
1965년 해창교가 건설되자 나루는 소멸되었다. 이어 1976년 영산강 하굿둑 공사로 목포간 뱃길도 차단되었다. 또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막아지고 바닷물이 차단되면서 포구 기능도 상실하였다. 갯고랑은 영암천이 되었으며 또 낙지, 민물장어, 숭어 등 어물이 나지 않아 관련된 상업도 쇠락하여 포구의 모습도 소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