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3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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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古地圖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탁현진 |
[정의]
전라남도 영암 지역이 나타나 있는 조선 시대 지도.
[개설]
고지도는 옛 사람들이 생활공간을 축소하여 문자나 부호, 색채 등을 통해 종이 위에 재현한 그림이다. 이를 통해 당시의 공간적 지리 정보와 함께 사람들의 지리 인식과 세계관, 그리고 지도가 표현된 당시의 사회 경제적 배경 등을 알 수 있는 중요한 기록유산이자 문화유산이다.
고지도는 지도에 수록되는 지역의 규모에 따라 세계 지도, 천하 지도, 전국 지도, 지방 지도, 군현 지도, 관방 지도로 분류할 수 있다. 그 중 전국 지도는 한 장의 종이에 넓은 지역이 취급되어 있기 때문에 군현 지도에 비해서 생활공간의 내용이 적게 수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청구도(靑邱圖)』, 『동여도(東輿圖)』, 『대동여지도(大東輿地圖)』는 다른 전국 지도에 비해 내용이 많이 수록되어 있다.
군현 지도는 조선 시대 행정 구역의 기본 단위였던 부(府), 목(牧), 군(郡), 현(縣)의 생활공간을 다루고 있는데 관아가 중심에 위치하고, 주변에는 백성들이 모여 사는 촌락과 경지가 펼쳐져 있다. 읍치 중심에는 관아 외에도 향교, 장시 등도 나타나 있어 고을의 모습이 꽤 상세히 그려져 있다.
영암 지역과 관련된 고지도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지도에 나타난 영암]
1750년대 초 그려진 회화식 군현 지도집으로 8책이며 가로 47㎝, 세로 30.5㎝이다. 현재는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중이다.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오키나와 등이 망라되어 있는데, 이는 국가 주도의 관찬 지도이기 때문이다.
지도의 상단에는 당시 영암군의 호수와 함께 결수, 곡물 총수, 군병 총수가 상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우측에는 읍성의 거리, 경도(京都)와의 거리, 인근 군과의 거리 등이 기록되어 있다. 하단에는 당이 영암군이 관할하는 면이 적혀 있다.
당시 영암군이 관할하던 면은 지금의 영암읍, 군서면, 덕진면, 도포면, 미암면, 삼호면, 서호면, 시종면 서부, 신북면, 학산면, 해남군 계곡면 선진리, 북평면, 송지면, 옥천면, 제주시 추자면, 완도군 노화읍, 보길면, 소안면이다.
읍치는 영암읍 동무리·서남리이며, 읍치의 성곽이 확대 과장되어 그려지고 다른 부분은 상대적으로 축소되어 그려졌다.
2. 『광여도』 「영암군」
1800년대 전반에 제작되었으며, 가로 36.8㎝, 세로 26.6㎝로 총 7책이다. 『해동 지도』와 유사한 형태로, 『해동 지도』와 유사한 군현 지도집이 민간에 유출되면서 만들어진 지도집이다. 현재는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중이다.
당시 영암군은 지금의 영암읍, 군서면, 덕진면, 도포면, 미암면, 삼호면, 서호면, 시종면 서부, 신북면, 학산면, 해남군 계곡면 선진리, 북평면, 송지면, 옥천면, 제주시 추자면, 완도군 노화읍, 보길면, 소안면을 포함하고 있다. 도서의 위치는 실제적인 거리는 무시하였다. 영암읍성은 서남리·교동리·남풍리 일대이며, 위(衛)·창(倉)·객사(客舍)가 그려져 있으며, 동문·남문·북문이 표시되어 있다.
3. 『여지도』 「영암군」
1700년대 말에 제작되었으며, 총 6책으로 구성된 전국 군현 지도책으로 『해동 지도』와 전체적인 구도가 동일하다. 크기는 대체로 가로 26.5㎝, 세로 19.1㎝이다. 현재는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다.
영암군은 『광여도』 「영암군」의 전체적인 구도와 내용이 동일하다. 더불어 당시 영암군이 관할하던 지역 또한 같다. 그러나 북이면(北二面)을 화대원(火隊院) 위쪽에 표시하지 않거나, 북일면(北一面)이나 송지면(松旨面)을 생략하는 등 『광여도』, 『해동 지도』와는 다른 점이 나타난다. 이는 두 지도를 필사하는 과정에서 누락한 것으로 보인다.
또 월경지(越境地)인 해남군 북평면과 옥천면, 어란진 등에 대해 구체적으로 표시하지 않았으며, 도서 지역은 크기나 위치가 고려되지 않은 채 그려져 있다.
1700년대 비변사에서 군사용으로 만든 지도로, 총 7책이다. 크기는 가로 대체적으로 103㎝, 세로 80㎝이다. 현재는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중이다.
지도의 상단에는 영암의 연혁이 표시되어 있다. 지도의 중앙에는 영암읍치가 표시되어 있으며, 당시 영암의 관할 면은 빨간 원으로 표시되어 있다. 당시 영암이 관할하던 면은 『여지도』 「영암군」와 동일하다.
군사용 지도답게 1700년대 영암군의 관할 지역이나 교통로가 상세히 표시되어 있으며, 영암군의 구체적인 연혁이 자세히 적혀 있다.
흥선 대원군 집권 후 개혁이 추진되는 상황에서 지방의 실정 파악이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1872년 지방 지도』가 편찬되었다. 1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제작되어 체계적이지는 못하나 이전의 지도와는 달리 상당한 양의 정보를 수록하고 있다. 지도는 필사 채색본이며, 대체적으로 크기는 가로 35㎝, 세로 25㎝이다. 현재는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중이다.
당시 영암의 관할 지역과 읍치의 위치는 위에서 언급한 지도들과 동일하다. 이를 통해 1700년대부터 이 당시까지 영암군의 행정 구역 변화가 없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872년 지방 지도』「영암군 지도」와 같은 목적으로 편찬되었으며, 대부분은 동일하다. 이진진(梨津鎭)은 현재 해남군 북평면 이진리 일대로, 당시에는 영암의 월경지였다. 1597년 처음으로 진을 설치하였으며, 1627년 수군만호 진으로 승격되었다. 이진진은 제주로 가는 배가 출발하는 장소이기도 했다.
진 안에는 객사(客舍), 군고(軍庫), 군량고(軍糧庫), 내아(內衙), 사령소(使令所), 아사(衙舍), 이청(吏廳), 장청(將廳)이 그려져 있으며, 진 밖으로는 영암 남창(靈巖南倉)과 영암 봉수(靈巖烽燧)가 그려져 있다. 이진진 주위로 인근의 도서 지역이 표시되어 있다.
『1872년 지방 지도』 「영암군 지도」와 같은 목적으로 편찬되었으며, 대부분은 동일하다. 어란진(於蘭鎭)은 현재 해남군 송지면 어란리 일대로, 당시에는 영암의 월경지였다.
어란진 안에는 객사(客舍), 군고(軍庫), 사령방(使令房), 아사(衙舍), 이청(吏廳)이 표시되어 있다. 어란진의 남쪽으로는 선소(船所)가 있으며, 그 주위로 다섯 척의 함선이 정박해 있다.
『1872년 지방 지도』 「영암군 지도」와 같은 목적으로 편찬되었으며, 대부분은 동일하다. 추자도는 현재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추자면으로, 당시 영암군이 관할하는 구역 중 가장 멀리 있는 지역이었다. 지도는 상추자도, 하추자도, 횡간도 등 추자 군도를 이루고 있는 섬들을 사실에 가깝게 표현하였으며, 상대적으로 다른 지역을 작게 묘사해 추자도가 두드러져 보인다. 또 이 지도에는 육지와 추자도 사이의 뱃길이 상세하게 그려져 있어, 육지와 제주 사이의 뱃길 연구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
8. 『지승』 「영암군」
정확한 편찬 연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1776년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판단된다. 전국의 군현을 총 6책으로 나누어 그린 그림식 지도로 각 책의 크기는 세로 27㎝, 가로 19㎝이다. 『경주도회』[좌통 지도], 『안동 도회』[좌통 지도], 『호서 지도』, 『해동 지도』, 『광여도』, 『여지도』와 거의 비슷하여 동일 필사본 계통으로 볼 수 있다. 현재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에서 소장중이다.
영암군의 표시는 전체적으로 『광여도』와 비슷하다. 영암의 남과 북이 뒤바뀌어 있으며, 당시 영암읍이 관할하던 지역이 모두 표시되어 있다. 그러나 도서의 실제적 위치와 크기는 무시한 채 그려져 있다. 필사한 탓에 영암군의 상세한 상황은 알기 어려운 편이다.
[의의와 평가]
영암의 고지도는 영암에 대한 역사 지리 정보의 보고이자 예술적 가치를 지닌 문화유산이다. 영암군이 그려진 고지도를 통해 당시 영암군의 자연환경, 인문 환경 등을 알 수 있고, 또한 월경지를 통해 당시의 행정 정책, 토지 정책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