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4002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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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칭/별칭 | 소쟁이 나루,송동이 나루,소동이 나루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변남주 |
[정의]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에 있었던 나루.
[개설]
소댕이 나루는 영암군 서호면 일대의 사람들이 나룻배를 타고 전라남도 무안군 일로장에 가거나 일로역에서 기차를 타고 전라남도 목포 등을 왕래할 때 주로 이용하였던 나루이다. 나루 사이 물길에는 소댕이샘이 있는데, 이를 돌아 건넜다. 조선 시대 지리지 기록과 일제 강점기 초기의 지도에서 확인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일제 강점기 후기에 등장한 나루다.
[명칭 유래]
소댕이 나루는 소쟁이 나루, 송동이 나루, 소동이 나루라고도 하는데, 무안 쪽 나루에 있었던 소쟁이 마을에서 명칭이 유래한다. 소쟁이 마을이란 명칭은 조선 시대에 무안군 일로읍 구정리 숯골에 있었던 솟다리포[鼎足浦]에서 유래한다.
솟다리포는 조선 시대 무안의 정족포를 말하며, 여기에는 관원이 머무르는 철소원과 철재 무기를 생산하여 군기감에 납품하는 무기 제작소, 즉 철소(銕所)가 있었다. 그러나 철소와 철소원은 조선 중기에 폐쇄되고 정족포만 기능을 유지하였다. 17세기 중반에 간행된 『동국여지지(東國輿地志)』에 “고철소원이 정족포에 있다.”라는 기록이 있다.
[형성 및 변천]
조선 시대에 소댕이 나루의 무안 쪽 안쪽 물길에 솟다리포가 있었는데, 소댕이 나루라는 지명은 솟다리포의 지명을 이어 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솟다리포 위치는 현재 영산강 강변 서쪽 수로변 쇠점등에 해당하나, 옛날에는 바다 갯고랑에 인접하였다. 솟다리포와 연결된 갯고랑을 따라 동쪽으로 약 1.5㎞ 가면 영산강과 합류하는데, 이 지점에 소댕이 나루가 있었다. 또 1970년대까지 목포와 남해포를 왕래하는 기선이 있었는데, 소댕이 나루에서 종선을 이용하여 목포행 기선에 승선하였다.
그러나 1980년 영산강 하굿둑이 완공되면서 나루는 소멸되었다. 현재 나루터 인근에는 서호 양수장이 만들어져 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전라남도 영암군 서호면 태백리 1325번지에 있었다.
[관련 기록]
“철장이 두 곳으로 하나는 동남쪽 자구동에 있으며, 하나는 남쪽 탄동에 있다. 품질은 모두 상품으로 연철 1586근을 군기감에 바친다[鐵場二, 一在縣東南紫口洞, 一在縣南炭洞品皆上. 鍊鐵一千五百八十六斤, 納于軍器監].”[『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무안현조]
“정족포는 무안현의 남쪽 30리에 있다[鼎足浦 在縣南 三十里].” [『동국여지지』, 무안현 산천조]
“고철소원은 정족포에 있다[古銕所院 在鼎足浦].”[『동국여지지』, 무안현 우역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