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352
한자 佛畵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집필자 강호선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불교의 교리를 알기 쉽게 그린 불교 회화.

[개설]

불상을 모신 전각에는 단청을 하고 벽에 불화를 그려 종교적인 신성한 분위기를 조성하는데 불화는 용도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사원의 분위기를 높여주기 위해 그린 장엄용 불화로 천장이나 기둥 벽면에 그린 단청과 벽화가 이에 해당한다. 둘째, 대중에게 불교의 교리를 쉽게 전달해주기 위한 교화용 불화로 팔상도, 시왕도, 아미타래영도 등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접하는 대부분의 불화가 이에 해당한다. 셋째, 의식 같은 때에 예배하기 위한 예배용 불화로 대표적인 것이 괘불(掛佛)이다. 이 세 용도는 정확히 구분되는 것은 아니어서 한 폭의 불화에 복합적으로 반영된 경우가 많다.

불화는 재료에 따라 거는 그림인 탱화, 벽에 그리는 벽화, 종이에 그리는 경화(經畵)로 나눌 수 있다. 탱화는 사찰 전각에 가장 많이 봉안되는 불화로 주로 비단과 삼베 바탕에 그림을 그린 다음 족자나 액자로 만드는데, 조선 후기가 되면 모시, 종이 등 바탕재료가 한층 다양해진다.

다른 불교 미술과 마찬가지로 불화 역시 인도에서 처음 그려지는데, 늦어도 B.C 3~2세기 경에는 사원의 수호 및 장식, 일반 대중의 교화를 위한 그림이 그려졌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는 삼국 시대 불교가 전래되어 많은 사찰들이 조성되면서 그에 따라 불교 회화도 많이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남은 것은 거의 없다. 다만 고구려 고분의 벽화나 부여 능산리 고분의 벽화, 영주 순흥 고분 등에 연꽃 무늬를 비롯한 불교적 소재를 표현한 그림이 남아 있다. 통일 신라 시대의 경우에도 755년 연기법사(緣起法師)가 제작한 『화엄경변상도(華嚴經變相圖)』만이 전하나 기록을 통해 보면 천수관음 벽화나 미륵보살 벽화 등 본격적으로 다양한 불화가 그려졌음을 알 수 있다. 고려 시대에는 불교신앙의 다양화와 함께 높은 수준의 불화가 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데, 현재 남아있는 고려 불화는 대개 고려 말에 제작된 것들이다.

조선 시대 억불정책 아래에서도 불화는 꾸준히 조성되었다. 특히 양란 이후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사찰 중건사업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면서 그에 따라 새롭게 불화가 조성되었는데, 현전하는 사찰 전각의 탱화 대부분이 18세기 이후 조성된 것들이다. 조선 시대 전각에 조성된 불화는 신앙의 위계와 의례에 따라 상단, 증단, 하단 불화로 구분할 수 있다. 상단불화는 부처와 보살이 중심이 된 불화로 전각 주존불의 후불탱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중단불화는 신중(神衆)을 모시는데, 전각의 오른쪽 벽면에 봉안되며, 하단불화는 왼쪽에 봉안된다. 하단은 영단(靈壇)으로 감로탱을 봉안하고 망자를 위한 천도재를 올렸는데, 이러한 삼단구성은 조선후기 사찰 전각에서 흔히 보이는 구성이다. 또한 조선 후기에는 발원자 즉 시주층이 넓어졌고, 불화제작이 성황을 이루는 가운데 금어(金魚) 또는 화사(畵師)라 불리는 전문 승려층이 담당했다. 이들 화사(畵師)들은 지역적으로 계파를 형성해 활동하여 불화에 지역별, 유파별 특징이 나타나며, 한 폭의 불화를 제작하는데 참여한 화사들은 각자의 전문 영역에서 분업적으로 불화를 제작하였다.

[강남구 소재 불화의 현황과 특징]

현재의 서울특별시 강남구는 조선 후기 경기도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강남구에 현존하는 전근대 시기 불화는 조선 후기 경기 일원 사찰 불화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해방 이전 강남구에 있었던 여러 사찰은 한국 전쟁과 강남개발을 거치면서 소실되었고, 현재는 봉은사불국사만이 현존하는데 봉은사 불화 가운데 상당수는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봉은사 대웅전의 삼세불도[1892년,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4호]·신중도[1844,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29호]·삼장보살도[1892,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5호]·감로탱[1892,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6호]·판전 신중도[1857,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0호]·비로자나불도[1886,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2호], 북극보전 칠성도[1886,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3호], 영산전 영산회상도[1895,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7호]·16나한도[1895,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238호]·사자도[1895,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8호]·신중도[1895, 서울특별시 문화재자료 제39호], 괘불도[1886,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 231호]가 이에 해당한다. 이들 봉은사 불화는 19세기 제작된 것들로 조선 후기 경기 일원에서 조성된 불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다. 그 중에서도 봉은사 대웅전의 삼세불도는 19세기 경기도 지역 불화의 기준 작품 중 하나로 꼽힌다.

첫째, 경기 일원의 사찰은 왕실을 비롯한 상류층의 시주와 후원이 잦았고, 불사(佛事)가 활발하게 진행된 만큼 새로운 불화가 많이 조성되었는데, 새로운 불화를 봉안할 때 낡은 옛 그림을 태워 없애고 새로운 불화를 봉안하였다. 그러다보니 경기도에서는 오래된 불화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데, 봉은사 역시 그러한 모습을 보인다. 둘째, 불화 조성시 시주층이 대부분 부유한 상류층인데, 비빈(妃嬪), 상궁(尙宮), 외척 등의 불사 참여가 빈번한 것도 특징이다. 봉은사 불화의 화기(畵記)를 살펴보면 상궁이 참여한 경우가 두드러지며, 당대 권세가였던 민씨 척족인 민두호(閔斗鎬)의 시주로 조성된 대웅전의 삼장보살도 및 감로탱 등이 그 예이다. 봉은사의 불화는 상류층의 후원으로 당시 최고의 화사가 제작에 참여함으로써 당대 최고 수준의 불화가 제작되었다. 셋째, 19세기 경기도 불화는 이전의 전통을 계승하는 면도 있으나 18세기까지의 불화나 다른 지역과 뚜렷하게 달라진 점이 채색에서 드러난다는 점이다. 음영 표현에 따른 채색 방법은 서양화법에 영향을 받은 음영 표현이 적극적으로 불화에 도입되어 나타난 변화인데 경기도 지역에서 가장 일찍 수용되었고, 금니를 많이 사용했다는 점도 특징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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