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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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福模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개항기 서울특별시 강남구 지역을 포함한 경기도 광주 일대를 관할했던 광주목의 교관.
[가계]
신복모의 출생 시기는 알 수 없고 1886년(고종 23)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신복모는 김옥균(金玉均)의 알선으로 1882년 일본 육군도야마학교[陸軍戶山學校]에서 무관 교육을 받고 귀국하여 이듬해 무과를 내려주라는 하교에 따라 무관의 자격을 받았다. 신복모는 박영효(朴泳孝)·김옥균·민영목(閔泳穆) 등 개화 세력 밑에서 교관의 책무를 맡아 보던 중 1883년 박영효가 광주유수 겸 수어사로 나갔을 때 무과에 배사(拜賜)되어 광주목(廣州牧)의 교관으로 채용되었다. 당시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를 포괄하고 있던 광주목의 군인들 1천여 명에게 약 1년간 신식 군사 훈련을 시켰으며, 이들을 1884년 갑신정변(甲申政變) 때 활용하였다.
신복모는 1884년 12월 4일 갑신정변 때 자신이 훈련시킨 군사들 40여 명을 인솔하고 대신들이 출입하는 금호문 밖에 매복하였다가 우정국(郵政局)에서 사건이 일어나면 대궐로 들어오는 대신들을 참살하는 임무를 부여받았다. 이 계획이 실행에 옮겨지지는 않았지만 개화당이 정권을 잡게 되자 그는 전위영부령관(前衛營副領官)에 임명되었다. 3일 만에 갑신정변이 실패로 돌아가자 도망다니다가 1886년 체포되어 참살되었다.
[상훈과 추모]
1908년 죄명을 벗었으며 1910년 7월 18일 종2품 규장각(奎章閣) 부제학(副提學)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