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효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537
한자 金孝大
이칭/별칭 여원(汝原),효정(孝貞)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이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21년연표보기 - 김효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37년 - 김효대 돈녕부 참봉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52년 - 김효대 낭관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56년 - 김효대 성천부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58년 - 김효대 수원부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78년 - 김효대 총융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80년 - 김효대 한성부판윤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81년 - 김효대 공조판서 제수
몰년 시기/일시 1781년연표보기 - 김효대 사망
묘소|단소 김효대 묘소 - 서울특별시 강남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경주(慶州)
대표 관직 돈녕부 참봉|낭관|성천부사|수원부사|총융사|한성부판윤|공조판서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묘가 있었던 조선후기의 문신.

[가계]

김효대의 본관은 경주(慶州) 자는 여원(汝原)이다. 할아버지는 경은부원군 김주신(金柱臣)이며, 아버지는 공조 참의 김후연(金後衍)이다. 어머니는 정지익(鄭志翼)의 딸이며, 숙종의 계비 인원 왕후(仁元王后)의 조카이다. 1721년(경종 1)에 출생하여 1781년(정조 5)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737년(영조 13) 음서로 돈녕부(敦寧府) 참봉(參奉)을 거쳐 포천군수를 지냈다. 1748년(영조 24) 고양군수로 있을 때 향교에 동서무(東西)가 없이 12현(賢)을 정전(正殿)에 배향(配享)한 것을 보고 향교의 제위(祭位)가 『속대전(續大典)』의 규정과 같지 않다고 상소하여 이를 시정하라는 윤허를 받기도 하였다.

1752년(영조 28) 낭관(郞官)으로서 숙종에게 존호(尊號)를 올리는 데 참여하였고, 1756년(영조 32) 성천부사로서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랐다. 이듬해에는 장단(長湍)에서 신라 경순왕(敬順王)의 묘를 찾아내 영조가 치제하기도 하였다. 1758년(영조 34) 수원부사를 거쳐 이듬해 승지(承旨)에 올랐다가 잠시 강원감사(江原監司)를 역임하고 다시 승지에 임명되어 도성으로 들어왔다. 1763년 공조참판(工曹參判)을 지내고 1769년(영조 45) 총융사(摠戎使)가 되었을 때는 도성 안 4산에서의 경작을 금지할 것을 적극 주장하였다. 1776년 영조가 죽자 소렴례(小殮禮)에 참가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정조의 별운검(別雲劍)을 지낸 뒤 1778년 다시 총융사에 임명되었다가 1779년 병으로 한 때 관직에서 물러났다. 1780년(정조 4) 한성부판윤이 되고 이어 형조판서(刑曹判書)에 다시 임용되었다가 이듬해 공조판서(工曹判書)를 마지막으로 생을 마쳤다.

[묘소]

『중정남한지』에 의하면 묘소가 경기도 광주 언주면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효정(孝貞)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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