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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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順孫 |
이칭/별칭 | 사호(士浩),자활(子活),문숙(文肅)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이상배 |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묘가 있었던 조선 전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인동(仁同), 자는 사호(士浩) 또는 자활(子活)이다. 성주(星州) 출신으로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장중지(張重智)이며, 어머니는 고승안(高承顔)의 딸이다. 부인은 김규(金珪)의 딸이다. 1453년(단종 1)에 출생하여 1534년(중종 29)에 사망하였다.
[활동 사항]
1485년 별시문과에 급제한 후 관직에 나가 정언(正言), 1496년에 홍문관 응교, 1499년 사인(舍人) 등의 언관직을 지내고, 우부승지·좌부승지를 거쳐 1500년 도승지(都承旨)에 올랐다. 1504년 갑자사화(甲子士禍)에 연루되어 유배갔다가 중종반정(中宗反正)으로 풀려나 경상도관찰사에 보임되었다. 1507년에 대사헌, 1509년에 호조판서를 지냈으며 1518년에는 조광조(趙光祖) 등 사림파가 주장했던 현량과(賢良科) 실시를 반대하다가 파면되었으나 1519년 기묘사화(己卯士禍) 이후 복직되어 이조판서가 되었다. 이후 나이 70에 궤장(几杖)을 하사받고, 정권을 장악한 김안로(金安老)의 후원으로 1533년 영상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묘소]
『중정남한지』에 의하면 묘소가 경기도 광주군 언주면으로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현재는 경기도 파주 조리면 장곡리로 옮겨져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숙(文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