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포동 충주석씨 집성촌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484
한자 開浦洞忠州石氏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승모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변천 시기/일시 1963년연표보기 - 반포리에서 개포동으로 개칭
성격 집성촌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개포동에 있는 충주 석씨 시랑공파 집성촌.

[개설]

개포동충주 석씨는 병사공파(兵使公派) 중 시랑공파(侍郞公派)에 해당한다.

[명칭 유래]

주민들 중에는 개포동을 아직도 개패로 부르기도 한다. 1962년까지 반포리(盤浦里)라 불렀는데 1963년 1월 1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면서 현 서초구 반포동과의 중복을 피하기 위해 개포동으로 개칭하였다. 충주석씨는 홍주 석씨로도 부른다.

[형성 및 변천]

충주석씨의 시조는 석린(石鄰)이다. 이들의 족보에 의하면 시조 석린은 1174년(명종 4) 조위총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예성군에 봉해졌다. 9세 판서공 문성(文成)의 2남 의정(義正)의 아들이다. 시조부터 9세까지 충주, 밀양 등지에 있다가 10세 의정이 예조 참의를 지내고 관북 지방 시찰 때 그곳에서 죽었다. 11세 석사진은 1407년에 태어나 세조 때 등과하고 단종 때 경상우병마절도사를 지내다가 세조 때 사의하고 물러나 의령 석천동에서 죽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태종실록』에는 1415년(태종 15) 1월 16일에 경상도와 영길도의 효자(孝子)와 절부(節婦)의 문려(門閭)에 정문(旌門)하라고 명하면서 의령(宜寧) 사람 학생(學生) 심치(沈致)의 아내를 들었는데 그는 전 부령(副令) 석사진(石斯珍)의 딸이라고 한 것을 보면 석사진은 고려 말기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병사공(兵使公) 사진의 셋째가 12세 총(摠)으로 시랑공파 파조다. 족보에는 23세 2남 인보(人補)[1888~1947]의 묘와 26세 수환(壽煥)[1860~1910], 명환(明煥), 규환(奎煥) 형제, 그리고 26세 도환(道煥)[1874~1959]과 익환(益煥)의 묘가 개포동으로 나와 1900년 전후로 시랑공의 후손들이 개포동으로 들어왔음을 추정할 수 있다.

[자연 환경]

개포동 충주석씨 집성촌 은 포구에 위치하고 있어 마을 주민들은 농사보다는 상거래 또는 도시의 수요를 겨냥한 땔감 판매 등으로 생계를 유지해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황]

2012년 현재 몇 가구는 안 되지만 자손들이 이곳에 머물러 살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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