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탄역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314
한자 饒呑驛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고려/고려
집필자 이우태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부근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시대 역(驛).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광주목(廣州牧) 고적(古跡)조에 “요탄역(饒呑驛). 고려 현종 9년에 거란이 와서 침범하므로 왕이 광주로 행차하였다가 두 왕후의 간 곳을 잃어 지채문(智蔡文)으로 하여금 가서 찾게 하였더니, 이 역에 이르러 바로 만나 모시고 돌아왔다. 왕이 기뻐하여 사흘 동안을 여기에 머물렀다.”고 하였다.

[내용]

요탄역(饒呑驛)이란 이름은 『고려사(高麗史)』와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에 보인다. 고려 현종 2년(1011) 정월 초하루 을해일에 거란의 침입으로 개경의 궁궐과 민가 등이 불타게 되었다. 이날 왕은 난리를 피하여 광주(廣州)에 머물렀는데, 두 왕후가 간 곳을 잃어 지채문(智蔡文)에게 가서 찾게 하였는데, 요탄역에 이르러서야 만나 모시고 돌아오니 왕이 기뻐서 왕후들을 위하여 3일 동안 머물렀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과 『동사강목(東史綱目)』에도 동일한 내용이 보이는데, 요탄역의 위치에 대해서는 모두 미상이라고 하였다.

다만 1682년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동여비고(東輿備考)』에 ‘요탄고역’이라는 지명이 보인다. 『동여비고』의 광주목의 왼쪽 부분, 탄천이란 지명 아래에 ‘麗顯宗失二后處[고려 현종이 두 왕후를 잃어버린 곳]’와 ‘繞呑古馹(요탄고역)[馹은 驛의 속자]’이라는 글자가 세로로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지도의 위치만으로는 이곳을 현재의 강남구와 연관 짓기 힘드나, 이 지도에는 방향을 잘못 그린 곳이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이 지도에는 대모산(大母山)이 읍치였던 남한산성으로부터 30리 떨어져 있다고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실재 대모산은 서울특별시 강남구와 서초구의 경계에 있는 산이므로, 광주 읍치의 남쪽이 아니라 서쪽에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착오 내지는 오류는 다른 곳에서도 보이는데, 이렇게 서쪽을 남쪽으로 오인하고 있는 사정을 감안한다면, 요탄역탄천의 남쪽이 아니라 실재로는 그 보다 서북쪽인 오늘날의 강남구 남쪽 끝 부근으로 비정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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