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8100694
한자 朴鵬
영어공식명칭 Park Bung
이칭/별칭 관학암(觀鶴庵)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경산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광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92년 - 박붕 임진왜란 창의
추모 시기/일시 1936년 - 심곡재 건립
추모 시기/일시 1974년 - 임진 창의 제공 하양사적비 건립
거주|이주지 박붕 거주지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지도보기
묘소 박붕 묘소 -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 지도보기
성격 의병
성별
대표 경력 훈도

[정의]

조선 후기 경상북도 경산 출신의 의병.

[개설]

박붕(朴鵬)[?~?]은 임진왜란 때 하양에서 의병을 일으켰으며, 영천성(永川城) 수복 전투를 도왔다.

[가계]

박붕의 본관은 울산(蔚山), 호는 관학암(觀鶴庵)이다. 아버지는 훈련원 첨정(訓鍊院僉正)을 지낸 박능정(朴能精), 어머니는 영인(令人) 김해 김씨(金海金氏), 할아버지는 동래 수성장(東萊守城將)을 지낸 박안세(朴安世), 증조할아버지는 박문준(朴文俊)이며, 부인은 통정대부(通政大夫) 주천수(朱千壽)의 딸 웅천 주씨(熊川朱氏)이다.

[활동 사항]

박붕은 선조 연간 문행(文行)으로 천거되어 훈도(訓導)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박능정과 함께 하양현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1592년(선조 25) 8월에는 권응수(權應銖)가 지휘하는 의병 부대가 영천성 수복 전투를 전개하자, 병력을 보내 지원하였다. 5년 동안 하양현의 수성장(守城將)을 지내면서 고을을 견고히 방어하였다. 1597년(선조 30) 울산의 도산성(島山城) 전투에서 아버지 박능정이 순절하자 시신을 직접 수습하였다. 박능정의 시신을 수습하며 왜군들에게 원수를 갚기로 다짐하였으나, 전란이 종료되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묘소]

박붕의 묘소는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 무심곡(武深谷)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36년 박붕의 후손들이 심곡재(深谷齋)[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 산19]를 건립하였다. 1974년에는 하양 출신 의병장 8인을 기리는 임진 창의 제공 하양사적비(壬辰倡義諸公河陽事跡碑)[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금락리 133]가 세워졌다. 이 비석은 ‘하양팔의사비(河陽八義士碑)’라고도 불리는데, 여기에는 박붕을 비롯해 신해(申海)·황경림(黃慶霖)·김거(金鐻)·허대윤(許大胤)·박능정(朴能精)·허경윤(許景胤)·허응길(許應吉)의 공적이 기록되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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