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30002
한자 -奉恩寺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분야 종교/불교,문화유산/유형 유산,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불상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선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14년 3월 11일연표보기 -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보물 제1819호로 지정
현 소장처 봉은사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원소재지 봉은사 -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531[삼성동 73]
성격 불상
재질 목조
크기(높이) 146.5㎝[석가불]|117㎝[아미타불]|115㎝[약사불]
소유자 봉은사
관리자 봉은사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제1819호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 봉은사에 있는 조선 후기 불상.

[개설]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과 약사불로 구성되어 있다. 아미타불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에 의하면 1651년에 조각승 승일(勝一)·이환(離幻) 등이 제작하였고, 1689년에 일어난 화재로 본존이 소실된 후 새로 만들어 대광보전(大光寶殿)에 기존 협시불과 같이 봉안되었으며, 1765년에 불상이 개금(改金)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14년 3월 11일 보물 제1819호로 지정되었다.

[형태]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대웅전 내 수미단 위에 본존인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과 약사불이 봉안되어 있다. 석가모니불은 146.5㎝, 아미타불은 117㎝, 약사불은 115㎝ 규모이다. 석가모니불은 결가부좌한 자세에 대의 안쪽에 편삼(偏衫)을 걸치지 않은 변형 통견(變形通肩)으로 입고 있다. 전체적으로 머리와 신체 비율은 적당한 편이지만, 1651년에 제작된 협시불에 비하여 머리가 약간 큰 편이다. 타원형 머리에는 뾰족한 나발(螺髮)과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가 있고, 이마 위에 반원형의 중앙 계주(中央髻珠)와 정수리에 원통형의 정상 계주(頂上髻珠)가 있어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의 형태를 하고 있다.

얼굴은 이마가 넓은 편으로, 눈초리가 위로 올라가고 코가 곧게 뻗은 삼각형이며, 작은 입은 은은한 미소를 머금고, 목에 가는 음각선으로 삼도(三道)를 새겨 넣었다. 오른손은 손등을 위로 한 채 손가락을 펴고 종아리 위에 둔 항마인(降魔印)을, 왼손은 결가부좌한 오른발 위에 손바닥을 위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있다. 대의 자락은 오른쪽 어깨 위에 끝자락이 거의 동일한 너비로 펼쳐지고, 나머지 대의 자락이 팔꿈치와 복부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며, 반대쪽 대의 자락은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수직으로 내려와 하반신에 펼쳐져 있다. 왼쪽 무릎 위에는 짧게 소맷자락이 늘어져 있다. 대의 안쪽에 입은 가슴을 덮은 승각기(僧脚崎)의 상단은 연판을 겹쳐 놓은 듯이 주름이 접혀 있다.

아미타여래 좌상은 전체적으로 본존과 착의법이 유사하고, 불상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에 의하면 1651년에 승일 등의 조각승이 제작하였다. 타원형의 머리 형태에 끝이 뾰족한 나발들과 원통형의 정상 계주, 반원형의 중앙 계주를 표현하였다. 얼굴에서 풍기는 인상은 본존보다 더 인자한 느낌을 준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앞으로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손바닥을 위로 하여 무릎 위에 자연스럽게 올려놓았다. 오른쪽 어깨를 덮은 대의 자락은 가장 끝자락이 반원형을 이루고 나머지 대의 자락은 본존과 같이 처리되었다. 약사불은 전체적인 신체 비율, 얼굴 표정, 수인, 착의법 등이 아미타여래와 동일하다. 본존과 협시불은 제작 시기와 작가가 달라 얼굴의 인상이나 착의법 등이 차이가 난다.

[특징]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가운데 아미타여래상은 내부에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에 “순치 팔년 신묘 칠월 십구일 …… 경기좌도 광주부 지서면 수도산 봉은사(順治八年辛卯七月十九日 …… 京畿左道廣州府地西面修道山奉恩寺)”라고 기록되어 1651년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수화승 승일, 이환, 설의(雪儀), 성조(性照), 도잠(道岑), 뇌일(雷日), 명눌(明訥), 삼응(三應), 초언(楚彦), 계철(戒哲) 등이 함께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1765년 개금한 발원문에 의하면 1689년에 발생한 화재로 소실된 석가모니불을 새로 조성하여 대광보전에 아미타불과 약사불과 같이 봉안하였다고 한다.

협시불을 제작한 조각승 승일은 수화승 현진과 창녕 관룡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대좌[1629년 제작, 보물 제1730호], 1634년에 수화승으로 영정사 법당 삼전패, 수화승 무염과 영광 불갑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35년 제작, 보물 제1377호]을 만들었다. 그리고 1637년에 수화승 현진과 성주 명적암 목조 여래 좌상, 수화승 청헌과 하동 쌍계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사보살 입상[1639년 제작, 보물 1378호]을 제작하였다.

또한 수화승으로 1646년 구례 천은사 수도암, 1648년 강진 정수사 대웅전 목조 삼세불 좌상,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1651년 제작, 보물 1819호], 1657년 무주 북고사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 1660년 동학산 용밀사[서울 청룡사 지장과 시왕상 봉안, 보물 1821호], 1665년 칠곡 송림사 명부전 불상, 1670년 김천 고방사 목조 아미타 삼존 불상 등을 제작한 17세기 중반을 대표하는 조각승이다.

[의의와 평가]

서울 봉은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은 조성 발원문과 개금 발원문을 통하여 중앙의 석가모니불이 좌우의 아미타불과 약사불보다 후대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협시불은 조각승 승일이 만든 기년명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에서 기준 작이 된다. 특히, 개금 발원문에 불상의 명칭이 석가여래, 아미타여래, 약사여래로 적혀 있어 삼세불(三世佛)을 통한 조선 후기 불교의 신앙 형태까지 밝힐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