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신앙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1816
한자 巫俗信仰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집필자 정승모

[정의]

과거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의 도당제 행사 때 이를 주관하거나 참여한 마을의 단골무당과 외부에서 초빙된 무당과 관련한 신앙.

[개설]

아직도 그 유제가 남아있는 강남구 도곡동 역말문화축제의 이전 모습처럼 이 일대에서도 마을마다 단골무당이 있어 도당굿을 주관하였다. 도당굿은 그 규모가 커서 굿을 할 때 외부에서 다른 무당을 초빙하는데, 주로 서빙고, 이태원 등 한강변에서 활동하는 무당이나 아니면 경기도 광주군 쪽 무당이 온다.

서빙고에서 오는 무당으로는 남옥이라고 부르는 무당이 유명하였다. 남옥이 무당은 강신무가 아니라 세습무다. 이태원에는 연치어머니라는 큰 무당이 있었는데, 작두도 탔다고 한다. 흔들이라는 무당도 있었다. 얼굴도 잘 생겨 굿을 한 번 하면 돈을 쓸어갔다고 한다. 일원동 무당과 함께 굿을 했다.

경기도 광주군 일대에서는 도당굿을 하는 무당과 잽이들이 있었는데, 경기도 광주군 송파 출신인 이일선(李日善)[1899년생], 이충선(李忠善)[1901년생]이 유명하였다. 그가 피리를 배웠다는 고재덕, 양경원도 경기도 광주군 출신이다.

무당들은 도당굿을 통해 주민들의 일 년 운수를 봐주고 사주, 관상도 봐준다. 그 중 운세가 좋지 않다고 나온 주민들에게는 별도로 굿을 권유한다. 굿을 하지 않더라도 점을 치기 때문에 중대한 일이 있으면 무당을 찾는다. 이러한 행위를 문복이라고 하는데, 복(福)을 물어본다(問)는 뜻인 것 같다. 주민들은 아무 무당이나 찾는 것이 아니라 각기 단골무당이 있어 해마다 정기적으로 찾기도 한다.

[변천]

일원동에서는 큰 굿을 하게 되면 서울에서 홍씨무당이라는 큰 무당이 동료 무당 등 여럿 패를 데리고 왔다. 이들은 일제 강점기 인력거 10여 대를 나누어 타고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그러다 해방 이후 무업이 잘 안되어 홍씨무당은 이곳 일원동에 거처를 정하고 당골무당이 되어 활동하다가 죽었다. 이후로 당골무당은 생기지 않았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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