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422
한자 撫安大君李芳蕃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31길 20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나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381년 - 무안대군 이방번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398년 - 무안대군 이방번 사망
이장 시기/일시 미상 - 광주 학당리 이장
관련 사항 시기/일시 1694년연표보기 - 신도비 세움
현 소재지 무안대군 이방번 묘 -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 31길 20[수서동 산10-1]지도보기
원소재재 무안대군 이방번 묘 - 통진 능동
성격 능묘
양식 단분합장(單墳合葬)
관련 인물 무안대군|부인 왕씨
소유자 광평대군파 종중
관리자 광평대군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시대 무안대군 이방번(李芳蕃)[1381~1398]의 묘.

[위치]

광평대군파 묘역 내 제실 북서쪽 120여m 떨어진 작은 구릉 중턱의 왼쪽에 위치해 있다.

[변천]

태조가 여러 왕자들을 봉작할 때 무안군이 된 방번은 삼군부 좌군절제사가 되었으나, 1398년 왕자의 난으로 세자 방석과 함께 살해되었다. 처음 통진(通津) 능동에 장례하였는데, 이곳은 태조가 왕이 되기 전에 있던 곳이다. 태조무안대군에게 공순(恭順)[후에 장혜], 의안대군 세자 방석에게는 소도(昭悼)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리고 세종은 1437년에 후사가 없는 이들 형제를 위하여 5남인 광평대군방번의 후사로, 6남인 금성 대군방석의 후사로 정하여 각기 사당을 세워 제사를 받들게 하였다. 그리고 광평대군의 묘역이 광수산[대모산] 기슭으로 이장되자 무안대군 역시 이곳에 부인 왕씨와 같이 이장되었다. 그 후 숙종 때 생모인 신덕왕후의 복위와 더불어 무안대군으로 추봉되었다. 1694년(숙종 20)에 무안군의 9세손 이선(李選)이 전후의 사적을 모아 묘소 앞에 신도비를 세우고자 하여 영중추부사 송시열이 그 시말을 짓고 11세 후손이 글씨를 써서, 의정부 좌참찬 신기상의 두전으로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형태]

묘는 단분합장(單墳合葬)이고 좌향은 남향이다.

[금석문]

묘는 처음 통진 능동에 있었으나, 광주 학당리로 이장되었다가 이곳이 1495년 성종의 능침으로 정해지자 다시 지금의 위치로 이장되었다. 묘역에는 묘표·상석·명등석·문석인·신도비 등이 갖춰져 있으며, 묘표 비신의 전면에 ‘왕자무안대군증시장혜공휘방번지묘해좌 삼한국부인왕씨부좌(王子撫安大君贈諡章惠公諱芳蕃之墓亥坐 三韓國夫人王氏祔左)’라고 새겨져 있다.

[현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에 속해 있어, 묘역과 더불어 잘 보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무안대군이 후손이 없이 제1차 왕자의 난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자, 광평대군으로 하여금 봉사손(奉祀孫)이 되게 하여 후에 전주 이씨 광평 대군파 묘역에 묘를 이장하게 된 사실과 더불어 조선 전기 정치사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