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388
한자 撫安大君神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31길 2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나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381년 - 무안대군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398년 - 무안대군 사망
건립 시기/일시 1695년연표보기 - 무안대군 신도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1년 2월 5일연표보기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지정
현 소재지 무안대군 신도비 -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 31길 20[수서동 산10-1]지도보기
원소재지 무안대군 신도비 - 통진(通津) 능동
성격 신도비
양식 옥개형 4면비로 가첨석과 비신을 받치는 방형 대좌
관련 인물 무안대군|세종|광평 대군|이선|송시열|신기상
크기(높이) 옥개석 106×61×24㎝|비신 60×139×20㎝|비좌 98×58×30㎝
소유자 광평대군파 종중
관리자 광평대군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시대 무안대군 이방번(李芳蕃)의 신도비.

[건립 경위]

조선 태조 7년(1398) 무인년 왕자의 난으로 이방번은 세자 방석과 함께 살해되었다. 처음 통진(通津) 능동에 장례하였다가, 뒤에 현재의 위치인 광주 서쪽 학당리 산에 부인 왕씨와 같이 이장하였다. 현종 때 생모 신덕왕후가 복호되어 정릉의 능호와 종묘 배향이 정해짐에 따라 무안군은 대군으로 올렸다. 한편 태종무안군공순(恭順)으로 시호하고, 세종 19년에 5남 광평 대군으로 하여금 후사를 잇게 하며 추성군(楸城君)이라는 작호를 더하였다. 그런데 명나라로부터 문종의 시호를 공순이라 하였기 때문에 무안군의 시호를 고쳐 장혜(章惠)라고 하였다. 1694년(숙종 20)에 무안군의 9세손 이선(李選)이 전후의 사적을 모아 묘소 앞에 신도비를 세우고자 하여 영중추부사 송시열이 그 시말을 짓고 11세 후손이 글씨를 써서, 의정부 좌참찬 신기상(申冀相)의 두전으로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위치]

광평 대군파 묘역 내 제실 북쪽 120여m 떨어진 작은 구릉 중턱의 왼쪽에 위치한 무안대군 묘 오른쪽에 있다.

[형태]

옥개형 4면비로 가첨석과 비신을 받치는 방형 대좌로 되어있다. 옥개석과 비신 사이의 좌우측 홈이 비신 상단보다 폭 4㎝, 깊이2㎝ 정도 남는 점으로 미루어 보아 옥개석은 본래의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인다.

[금석문]

비신 상단에 4면을 따라 전서(篆書)로 ‘증무안대군시장혜공신도비(贈撫安大君諡章惠公神道碑)’라고 새겨져 있다. 비제는 ‘유명조선국무안군증무안대군시장혜공신도비(有明朝鮮國撫安君贈撫安大君諡章惠公神道碑)’이다. 비문은 송시열(宋時烈)이 짓고, 11세손 □□가 글씨를 썼으며, 신기상(申冀相)이 두전(頭篆)하였다. 우측면에 ‘숭정기원후육십칠년갑술십이월일(崇禎紀元後六十七年甲戌十二月日)’이라고 새긴 것으로 보아 1694년(숙종 20)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크기는 옥개석 106×61×24㎝, 비신 60×139×20㎝, 비좌 98×58×30㎝이다.

비문 가운데 명문(銘文)을 살펴보면 “아! 공같이 훌륭한 덕을 갖춘 분이 나라의 명이 새롭게 일어날 즈음에 간신들의 흉계만 없었더라도 형제간에 옛 주나라 문왕(文王)의 아들처럼 우애 있게 지냈을 것이고, 뒤에라도 험악한 자들의 잔인한 짓만 없었더라도 동해(東海) 송왕(宋王)처럼 부귀를 누려서 양조[태조태종]가 인자와 우애의 덕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중략] 본조(本朝)의 인후한 뜻이 또한 족히 길이 나라의 명을 기약하는 기틀이 될 수 있을 것이니 아! 아름답구나.”라는 내용이다.

[현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에 속해 있어, 묘역과 더불어 잘 보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무안대군이 세상을 떠난 후 300년이 지난 후에 세워져 대군으로 증시된 내용과 더불어 조선 정치사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