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390
한자 永順君神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31길 20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나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444년 - 영순군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470년 - 영순군 사망
건립 시기/일시 1574년연표보기 - 영순군 신도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1년 2월 5일연표보기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지정
현 소재지 영순군 신도비 -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 31길 20[수서동 산10-1]지도보기
성격 신도비
관련 인물 영순군|광평대군|세조|남이
크기(높이) 옥개석 130×63×26㎝|비신 89×209×27㎝|비좌 158×89×30㎝
소유자 광평대군파 종중
관리자 광평대군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 시대 영순군 이부(李溥)의 신도비.

[개설]

영순군[1444~1470]은 태어나자마자 아버지 광평대군을 여의었다. 세종이 이를 불쌍히 여겨 5세까지 세자와 같이 공부하도록 궁중에서 길렀으며, 8세가 되자 특별히 가덕대부(嘉德大夫) 영순군(永順君)에 봉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여 문무에 통달하니 세조는 항상 옆에 두고 모든 왕명의 출납을 일임하였다. 1466년(세조 12) 등준시(登俊試)에 5등으로 합격하고, 이듬해 5월 이시애(李施愛)의 난 때에는 세조의 평정계획에 적극 참여한 공로로 적개공신(敵愾功臣)에 책훈되고, 현록대부(顯祿大夫)에 올랐다. 1468년 2월 세조가 온양에서 베푼 문과중시에 장원하여 미곡 50석을 하사받았다. 1469년(예종 1)에 일어난 남이(南怡)의 옥에 공을 세워 익대공신(翊戴功臣) 2등에 녹훈되었다.

[건립 경위]

1470년 영순군이 세상을 떠났을 때 여러 아들이 다 어려서 미처 비를 세우지 못하였다가 105년이 지난 1574년(선조 7)에 이르러 증손자 전 한성부 판관(前漢城府判官) 염과 황간 현감 희안(希顔)이 종친과 상의하여 여성군(礪城君) 송인(宋寅)에게 비문을 부탁하여 가승(家乘)을 바탕으로 글을 짓고, 이염(李恬)이 글씨를 썼으며, 성균관권지(成均館權知) 박렴(朴簾)이 두전(頭篆)하여 신도비를 세우게 되었다.

[위치]

수서동 광평대군파 묘역광평 대군 이여의 묘 북서쪽 50여m 떨어진 작은 구릉 중턱에 있는 이부의 묘 하계(下階) 오른편에 있다.

[형태]

옥개형 1면비로 가첨석과 비신을 받치는 방형 대좌로 되어 있다. 옥개석은 낮고 편평한 평옥개석이다.

[금석문]

비신 상단에 전서(篆書)로 ‘공소공신도비명(恭昭公神道碑銘)’라고 새겨져 있으며, 비제(碑題)는 ‘유명조선국종실정충적개보사정난익대공신현록대부영순군증시장공소공신도비명병서(有明朝鮮國宗室精忠敵愾保社靖難翊戴功臣顯祿大夫永順君贈諡恭昭公神道碑銘幷序)’이다. 비문은 여성군(礪城君) 송인(宋寅)이 짓고, 증손자 전한성부판관(前漢城府判官) 이염(李恬)이 글씨를 썼으며, 성균관권지(成均館權知) 박렴(朴簾)이 두전(頭篆)하였다. 앞면 좌측에 ‘만력이년갑술육월일입석(萬曆二年甲戌六月日立石)’이라고 새긴 것으로 보아 1574년(선조 7)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크기는 옥개석 130×63×26㎝, 비신 89×209×27㎝, 비좌 158×89×30㎝이다.

비문 내용은 ‘공의 휘는 이고, 자는 준지(俊之)로서 우리 세종 장헌 대왕의 손자이다. 아버지는 광평대군이고 어머니는 영가부 부인(永嘉府夫人) 신씨(申氏)로 증좌의정 휘 자수(自守)의 딸이다.’라고 시작하여 이어 출생과 일찍이 부모가 세상을 떠나 세종에 의해 궁중에서 자란 과정을 밝히고 있다. 이후 궁에서 나와 가덕대부 영순군에 봉해진 과정과 혼례, 등준시(登俊試)에 합격하고 1467년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정충적개공신이 된 사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후 공신의 추록과 『육전(六典)』의 수찬 감독 등의 행적을 기록하고 부음과 광주 고을 서쪽 언주리 광수산 자좌오향(子坐午向)의 언덕에 장사지냈음을 밝히고 있다. 이어 영순군의 성품과 부인 전주 최씨의 가계 및 출생자녀 관련사실이 기록되어 있고, 광수산 갑좌경향(甲坐庚向)에 장사지내니 서쪽 영순군의 묘와 100보 거리에 있다고 하였다. 다음에 맏아들 남천군 이쟁(李崝), 차남 청안군 이영(李嶸), 삼남 회원군 이쟁(李崢) 및 손자, 증손자 등 200여 명의 증현손이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어 ‘공이 돌아갔을 때 여러 아들이 다 어려서 미처 비를 세우지 못하였다가 105년이 지난 오늘에야 증손 전 한성부 판관 염과 황간 현감 희안(希顔)이 종친과 상의하기를 ‘우리 공손공의 명성과 공적은 온 나라 사람이 다 들어 알고 있는데 아직까지 신도비가 없으니 오히려 자손이 있다고 하겠는가? 하고 마침내 돌을 깨 다듬어 나 [송]인에게 글을 구하였다. 적격자가 아니라고 사양하였으나 허락을 얻지 못하여 그 집안의 가승을 근거로 하여 쓰고 다시 짧은 명을 덧붙인다.’고 하였다.

[현황]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에 속해 있어, 묘역과 더불어 잘 보전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옥개형 1면비의 양식을 갖추고 있고, 특히 영순군이 세상을 떠난 후 105년 이 지난 후에 세워져 영순군의 행적을 자세히 기록함으로써 조선 초기 정변에 따른 급박한 정치사의 일면을 살펴볼 수 있어 학술적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