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416
한자 全州李氏廣平大君派墓域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능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31길 20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나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1년 2월 5일연표보기 -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광평로 31길 20[수서동 산10-1]지도보기
성격 묘역
관련 인물 광평대군
봉분 크기/묘역 면적 412,593㎡[125,237평]
소유자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종중
관리자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에 위치한 조선 세종의 5남 광평대군과 그 후손의 무덤 700여 기가 마련되어 있는 묘역.

[개설]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강남구 수서동 산10-1·6·8·9·14에 위치하고 있다. 1981년 2월 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면적은 412,593㎡[125,237평]이며,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 묘역에는 광평대군 이여(李璵)와 그 부인인 영가부부인(永嘉府夫人) 신씨(申氏)를 비롯한 1398년(태조 7) 무인정사(戊寅定社)[제1차 왕자의 난] 당시 세자였던 의안대군(宜安大君) 이방석(李芳碩)과 함께 살해된 그의 동복형 무안대군(撫安大君) 이방번(李芳蕃)과 부인 왕씨, 그리고 광평대군의 아들인 영순군(永順君)을 비롯한 그 종실 700여 기의 묘소가 같이 모셔져 있다. 또한 이곳은 종가 재실을 중심으로 마을을 형성하였던 곳으로서 마을 이름을 궁말·궁촌이라고 부르며, 이 일대의 아름다움을 궁촌팔경이라고 하였다.

광평대군세종의 다섯째 왕자로서 1425년(세종 7) 5월에 출생하여 1432년(세종 14) 정월에 광평대군으로 봉해졌다. 5년 후에는 세종의 명으로 후사가 없는 공순공(恭順公)[훗날 장혜공(章惠公)] 이방번의 봉사손(奉祀孫)으로 입양되었다.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온 대군은 문장은 물론 활쏘기와 격구(擊毬)를 잘하고 음률과 산수에 밝아 특히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무안대군의 봉사손으로 입양된 후에는 안암동[사당말]에 양부(養父)의 사당을 짓고 7년간을 기거하였다.

광평대군은 동지중추부사 신자수(申自守)의 딸과 결혼하여 영순군 이보(李溥)를 두었으나 1444년(세종 26) 병으로 20살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영순군도 30세 이전에 요절하였으나 그 후손이 번창하여 왕족 중에서는 후손이 많기로 유명하였다.

한편 광평대군이 처음 안장된 곳은 광주 서촌 학당리[현 강남구 삼성동 선릉 부근]에 있었는데, 51년 후인 1495년(연산군 1) 3월 이곳이 성종의 왕릉인 선릉 터로 정해지면서 현재의 위치인 광주 대왕면 광수산[대모산 전체로도 볼 수 있고, 북쪽 한 봉우리를 칭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으로 이장되었다.

광평대군과 부인 신씨의 묘소는 제각 뒤 높은 구릉 중턱에 위에 쌍분으로 되어 있다. 장대석으로 단을 쌓은 위에 봉분이 놓여 있고, 그 아래에 묘갈과 낮은 받침돌을 둔 혼유석이 갖춰져 있다. 하단에는 2기의 장명등과 우측에 신도비, 그리고 또 한 단 아래 좌우로 문석인 2구가 세워져 있다. 신도비는 1574년(명종 7)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심의겸(沈義謙)이 짓고, 머리전서는 박렴(朴簾)이 썼다.

이와 같이 단을 쌓은 위에 봉분이 있는 양식은 양녕대군이나 효령대군의 묘소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으로 조선 초기 대군묘의 규모나 규범을 참고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묘역 아래에 있는 제각의 동쪽 아래에는 ‘세장기비(世葬記碑)’가 있는데 이는 가족묘에 관한 특유 기록이 담긴 비석이다. 이 ‘광주치서광수산이씨세장기(廣州治西光秀山李氏世葬記)’ 비는 숙종 21년(1695)에 평양부윤을 지내고 북한산성 수축을 완료하였으며, 삼정승을 역임한 이유(李濡)가 186기의 무덤의 위치를 조사한 내용을 이담(李湛)이 쓴 것으로 가족 묘소로서의 오래되고 광대한 면모를 보이고 있다.

이 묘역은 서울이나 근교에 현존하는 조선왕조 왕실 묘역 가운데 가장 원형에 가까운 것이며, 봉분과 석물 및 부속 건물의 구조와 배치상황은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한편 묘역 입구 수서동 514-8 광평로 대로변에 있는 전통가옥 이병무가는 현재 ‘필경재(必敬齋)’라는 이름으로 궁중요리를 제공하고 있으며, 강남구 전통건조물 제1호로 지정되어 있다. 남향의 □자형 평범한 양반집 가옥으로 종중 소유로 종가로 사용되었다. 약 500년 전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임오군란 때 화재를 입기도 하였으나, 지금은 안채·사랑채·문간채 등 40칸 정도 남아 있다. 지금은 전통궁중음식을 보급하는 음식점 구실을 하고 있다. 건물 뒷마당에는 혜정공(惠定公) 이유의 4각 기둥형 신도비가 서있다.

[위치]

강남구 광평로 31길 20[수서동 산10-1] 일대에 분포되어 있다. 서울도시철도3호선 수서역에서 일원역 방향으로 가면 태화기독교사회복지관 삼거리가 나오고, 복지관을 따라 돌아가면 광수산 남사면에 있는 광평대군파 묘역에 이른다.

[형태]

탄천양재천이 만나 한강으로 흘러드는 위치에 솟아 있는 대모산 북쪽으로 뻗은 능선의 끝자락에서 궁말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일대에 약 700여기의 봉분과 석물 및 재실과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금석문]

묘역 안에는 광평대군 신도비, 무안대군 신도비, 영순군 신도비, 이후원 신도비, 혜정공 신도비, 이현응 묘비, 이형 묘비와 많은 묘표가 있으며, 특히 가족묘에 대한 기록을 담은 세장기비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현황]

묘역 면적 412,593㎡[125,237평]에 있는 약 700여기의 봉분을 대상으로 1981년 2월 5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되었다. 현재 전주 이씨 광평대군파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서울이나 근교에 현존하는 조선왕조 왕실 묘역 가운데 가장 원형에 가까운 것이며, 봉분과 석물 및 부속 건물의 구조와 배치상황은 중요한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8.17 내용 변경 [개설] 무인정사(戊寅靖社) → 무인정사(戊寅定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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