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090
한자 宮-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해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조선시대 -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수서리 궁마을
변천 시기/일시 1914년 3월 1일연표보기 -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수서리
변천 시기/일시 1963년연표보기 - 서울특별시 편입. 성동구 수서동 관할
변천 시기/일시 1975년 10월 1일연표보기 - 서울특별시 강남구 분리. 강남구 수서동 관할
성격 자연마을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 수서동에 있는 자연 마을.

[개설]

궁마을서울도시철도 3호선 수서역에서 개포동 방면의 광평로 인근에 있는 자연마을로 전주 이씨 집성촌이 있다.

[명칭 유래]

궁마을의 유래를 보면 1470년(성종 원년)에 세종의 손자인 영순군(永順君)을 당시 경기도 광주 수토산(水土山)인 궁마을 앞의 대모산(大母山)[293m]에 예장(禮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1496년(연산군 2)에 무안 대군(撫安大君)광평 대군(廣平大君)의 묘소를 광주 서촌 학당리에서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이에 영순군의 아들 3형제가 수토산 아래에 집을 짓고 삼궁(三宮)이라 일컬었기 때문에 이 마을을 궁촌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궁마을이 지명으로 정착하게 된 것은 영순군의 차남 청안군(淸安君)의 손자인 아산현감 이인건(李仁健)이 궁촌에다 재실을 지은 후 대대로 제사를 지내게 되면서부터라고 알려져 있다.

[형성 및 변천]

궁마을은 남한산성 서쪽으로 20리 지점 대왕면에 있는데, 백제 때 도읍으로 정해진 곳이라고 알려져 있다. 조선 시대 말까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수서리에 속해 있었으며, ‘궁말’ 또는 ‘궁촌(宮村)’이라 불렸다. 1914년 3월 1일 경기도 구역 획정 때에도 이 지역은 경기도 광주군 대왕면 수서리로 남아 있었다. 이후 변동이 없다가 1963년 서울특별시 행정구역 확장에 따라 서울특별시에 편입되어 성동구 수서동 일대가 되었다. 1975년 10월 1일에는 성동구로부터 강남구가 분리 신설되어 강남구가 속하게 되어 현재에 이르게 되었다.

[자연 환경]

궁마을은 조선 시대의 『중종실록(中宗實錄)』에 보면 남한산성 서쪽에 탄천이 흐르고, 동쪽과 서쪽에 수초가 무성하게 자라서, 수렵의 장소로 삼았다고 쓰여져 있다. 이로 보아 당시 조선시대 궁마을은 수풀이 울창하여 사냥터로도 즐겨 이용되었던 것으로 유추된다.

현재는 대모산을 등지고 있는 마을 형태로 강남구 내 타 마을보다 높은 녹지 확보율을 보이고 있다.

[현황]

궁마을은 6차선으로 구성된 광평로로 이분되어 있는데, 고층의 아파트와 전원주택단지로 구성되어 있다. 수서동 일대의 타 마을에 비해서 낮은 주거 건물들이 입지하고 있어 주거환경으로의 입지는 좋은 편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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