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릉과 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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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이익이 선정릉이 임진왜란 때 훼손되었던 일을 떠올리며 그 원통함을 표현한 글. 「선정릉」은 이익(李瀷)[1681~1763]의 문집 『성호사설(星湖僿說)』 제9권에 수록되어 있다. 선정릉은 조선조 성종(成宗)의 능인 선릉(宣陵)과 중종(中宗)의 능인 정릉(靖陵)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해 있다. 이 두 왕릉은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도굴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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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권필이 선릉과 정릉의 두 왕릉을 지나며 느낀 감회를 읊은 한시. 「이릉(二陵)을 지나며 감회가 일어」는 권필(權韠)[1569~1612]의 『석주집(石洲集)』 제7권에 수록되어 있다. ‘이릉’은 조선조 성종(成宗)의 능인 선릉(宣陵)과 중종(中宗)의 능인 정릉(靖陵)을 가리키는 것으로 현재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해 있다. 이 두 왕릉은 임진왜란 때 왜병에 의해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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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의 관광 산업. 최근 서울특별시에서는 명동과 보조를 맞춘 첨단 고급 관광지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강남구의 관광산업이 부각되었다. 강남구의 관광산업이 주목받는 이유는 첨단산업과 패션 등 볼거리의 풍부함, 강북과 차별화된 고급화 전략, 한류 스타를 활용한 스토리텔링 마케팅, 의료 관광, VIP 관광 등 적극적인 관광객 유치 기법 개발이 제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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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을 보수한 조선 전기의 문신. 본관은 안동, 자는 이원(而遠), 호는 송암(松菴)으로 찬성사(贊成事) 권근(權近)의 후손이다. 사직(司直) 권굉(權硡)의 아들이며 부인은 현감 이효언(李孝彦)의 딸이다. 1538년(중종 33)에 출생하여 1598년(선조 31)에 사망하였다. 권징은 1562년(명종 17)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검열(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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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 시대 능과 묘를 통합하여 이르는 말. 조선 시대 신분과 위계에 따라 무덤을 부르는 이름이 달랐다. 왕·왕후의 무덤은 능, 세자·세자빈·세손과 왕의 사친(私親) 및 왕을 낳은 후궁의 무덤은 원(園), 기타 왕족과 일반 사대부 및 서민의 무덤은 묘라고 하였다. 능묘는 조상신을 숭배하는 일종의 신성공간으로 세상을 떠난 조상의 체백이 머무는 능침공간과 후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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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조선 9대왕 성종과 그의 비 정현왕후(貞顯王后), 11대 왕 중종의 능묘. 성종은 성종 25년(1494) 12월 24일 창덕궁 대조전(大造殿)에서 승하하였다. 연산군 원년(1495) 1월 14일 묘호(廟號)를 성종, 능호를 선릉으로 하고, 이 해 4월 6일 지금의 선릉 자리인 광주부 서면 학당리의 언덕에 예장되었다. 그 35년 후인 중종 25년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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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실과 종실의 세장지(世葬地)이던 조선시대의 강남구. 1. 음택풍수의 길지 강남 조선 왕조 개창 이후 한양의 북악, 인왕, 남산, 낙산의 내사산(內四山) 능선을 잇는 도성을 쌓고 그 안의 지역을 한성부(漢城府)로 하여금 관할하게 하였는데, 한성부의 실제 행정 관할 권역은 성 밖 10리 일대에까지 미쳤다. 이 지역을 성저십리(城底十里)라 불렀다. 성저십리(城底十里)는 북한산, 아차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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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1598년까지 일본 이 서울특별시 강남구를 포함한 조선을 침략한 전쟁. 임진왜란은 1592년 4월 일본군이 수십만 대군으로 한반도 전역을 침략하여 7년간 벌어진 전쟁으로, 급기야 조선·일본·명이 참전한 국제 전쟁이 되었다. 임진왜란의 결과, 일본과 명은 정권이 교체되고, 조선은 예학을 바탕으로 한 새로운 사회질서가 더욱 확고해졌다. 임진왜란으로 국토가 유린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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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비즈니스 거리. 테헤란 벤처밸리는 강남구 역삼동 825-15[현 강남대로]에서 선정릉공원을 거쳐 송파구 잠실동 50[현 삼성교]에 이르는 너비 50m, 길이 4,000m의 주간선도로이다. 강남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표적 간선도로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며 서울 경제의 미래를 이끌고 있는 무역 도시의 거리이다. ‘테헤란 벤처밸리’라는 명칭은 이란과 한국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