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214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해경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위치한 비즈니스 거리.

[개설]

테헤란 벤처밸리강남구 역삼동 825-15[현 강남대로]에서 선정릉공원을 거쳐 송파구 잠실동 50[현 삼성교]에 이르는 너비 50m, 길이 4,000m의 주간선도로이다. 강남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표적 간선도로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며 서울 경제의 미래를 이끌고 있는 무역 도시의 거리이다.

[명칭 유래]

테헤란 벤처밸리’라는 명칭은 이란과 한국과의 우호를 증진하는 뜻으로 이란의 수도 테헤란의 이름을 따서 테헤란로라고 한 것에서 연유한다. 중동지역의 건설 붐이 일어났던 1976년 테헤란 닉페이[Gholam Reza Nikpay] 시장이 서울시와 자매 결연을 맺기 위해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이란 진출을 기념하기 위해서 서울시에는 ‘테헤란로’를, 테헤란시에는 ‘서울로’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에 당시 구자춘 시장은 흔쾌히 동의했다. 원래 테헤란로는 그 대상지로 여의도동 1-101호에서 552호[현 여의교 북단]까지로 정했으나, 다시 지금의 구간으로 명명한 것이다. 테헤란시 메라트공원 인근 길은 ‘서울로’로 불리게 되었다. 강남역 사거리 역삼 빌딩 앞에는 이를 설명하는 기념비가 있다.

[형성 및 변천]

테헤란 벤처밸리의 주간선도로는 강남개발에 의해서 형성된 길로, 1972년 한양천도 578주년 기념 가로명 제정 때에는 삼릉로(三陵路)라고 하였다. 삼릉로라는 이름은 부근에 선릉(宣陵)과 정릉(靖陵)성종성종의 계비인 정현 왕후(貞顯王后) 윤씨, 그리고 중종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이후 1977년 가로명을 테헤란로로 변경한 것이다. 당시 테헤란로는 서초동 423에서 삼성동 64-12 삼성교에 이르는 너비 40m, 길이 3,700m이었다. 그 후 삼성교 건너까지 구간이 연장되고 너비도 50m로 넓어졌다. 이 길은 강남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대표적 간선도로로, 강남개발의 진행과 함께 서울도시철도 2호선 완공 및 1988년 서울올림픽 등의 힘을 받으며 성장하였다. 이후 테헤란로에 면한 쪽으로는 고층 건물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테헤란 벤처밸리의 특징적인 경관을 형성하는 건물의 축조 과정을 시기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960년대에는 토지구획 정리사업으로 기반시설이 조성되었고, 배후 지역에 극소수의 주택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때는 도시 계획의 영향으로 영동지구 중심의 상업 지역으로의 성격과 위상이 결정된 시기였다. 공공 개발은 도로와 교량 등 기반 시설 위주가 진행되었고, 민간 부동산 시장에서는 일부 주택 개발 외에는 이렇다 할 개발 움직임이 없었다.

1975년에서 1986년까지도 테헤란로에는 별다른 개발이 없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전국적으로 부동산 투기 붐이 있었음에도 테헤란로 중심지보다는 서측 입구인 강남역 사거리의 개발이 활발하게 진행되었다. 강남역 사거리에는 국기원·특허청·국회도서관 역삼분관 등이 입지하여 인구와 산업을 유인하는 역할을 하였다. 동측 입구에 해당하는 삼성역 사거리에는 한국전력·종합무역전시관·서울의료원 등이 이전해 왔지만 인구 및 산업 유발 효과는 미미했다. 이는 주로 공공 기관들이 개발을 이끌었음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는 서울도시철도 2호선이 개통하였지만 개발의 영향은 강남역 사거리에 집중되었고, 개발축이 테헤란로로 옮겨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향후 테헤란로 주변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기제로 작용하였다.

1987년에서 1997년에는 오피스 빌딩 개발이 전성기를 이루었다. 3저 호황 이후 찾아온 부동산 투기 열풍은 1993년까지 테헤란로 전 지역 개발의 배경이 되었다. 이로 인해 유흥 및 위락 시설 등이 테헤란로 상업 지역과 함께 주거 지역까지 들어서자 상이한 성격의 용도상충의 문제로 도시 설계 계획 개념으로 용도 분리 방침이 설정되었다. 이는 위치에 따라서 숙박시설, 자동차 관련 시설, 운수 시설, 위험물 저장 및 처리 시설, 교육 및 연구 시설, 종교 시설, 옥외 골프장 등의 용도가 제한되었고, 개발은 오피스 용도 위주로 진행되었다. 이로 인해 오피스 공급이 강북을 초과하여 오피스 빌딩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되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반도체의 호황과 함께 오피스 용도의 초과 공급의 결과로 하락한 임대료로 IT 산업 사업체들이 대거 이주해 왔다. 1990년대 후반 정부의 대대적인 금융권 조정 이후 고도의 전문 지식과 새로운 기술을 가지고 창조적·모험적 경영을 전개하는 벤처(venture)기업과 정보통신 업종들이 길 양쪽에 들어섰다. 이들은 특히 역삼역선릉역 사이에 집중적으로 몰려 있었다. 1995년부터 안철수연구소·두루넷·네띠앙 등 소프트웨어 및 정보통신 벤처 기업이 많이 입주해서 미국의 실리콘밸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테헤란 밸리라는 별칭이 붙어 있을 정도다. 이는 테헤란로가 첨단 정보 통신 기반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어 이러한 업종의 사업 환경이 좋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들을 위한 창업 투자 회사 등도 모여들었다. 수많은 벤처 기업들로 인해서 ‘테헤란 밸리(Teheran Valley)’란 명칭으로 불려졌다.

이후 정보통신 산업의 경기 침체로 벤처 열풍이 지나간 후에는 성형 외과 등이 증가해 ‘뷰티 벨리(Beauty Valley)’라 불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포스코센터 등 국내외 대기업 본사들이 테헤란로에 화려한 빌딩이 입지하면서 금융기관들도 함께 들어서 ‘브랜드 밸리(Brand Valley)’라 불리며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다. 이 변화 과정에서 줄지어 들어선 테헤란로의 고층 업무빌딩들은 강남 지역에서도 가장 현대적이고 특별한 경관을 지니고 있다. 테헤란로는 건축미를 뽐내는 마천루(摩天樓)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테헤란로는 짧은 역사 속에서 시대 흐름에 따라 1970년대 중동건설 붐을 반영하는 현대사의 한 상징으로 출발해 금융가·벤처의 요람·대기업의 거리로 변신을 거듭해 왔다. 산업 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에 테헤란로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가며 서울 경제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현황]

기존 연구[허윤주, 2011]에 의해서 밝혀진 테헤란로의 2008년 기준 물리적 현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테헤란로 주변에는 100평에서 200평까지의 필지가 50%이상이며, 주로 배후 지역의 위치한 100평 이하의 소규모 필지가 30%에 달한다. 간선 가로변에는 300평 이상의 필지들이 분포하는 등 다양한 규모의 필지들이 공존하고 있다.

테헤란로 주변은 사무실 용도의 연면적이 전체 건축물 연면적의 74.2%에 달해 중심 업무 지역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나머지는 근린 생활시설 11.3%, 위락 및 숙박시설 6.4%, 주거 기능이 5.1%에 달한다. 건축물의 규모는 5층에서 10층 규모의 건물이 48.9%에 달하며, 간선도로변의 대부분을 20층 이상 건축물이 차지하여 일대의 가로경관을 지배하고 있다. 4층 이하의 건축물도 25.5%에 달해 다양한 층수의 건축물이 분포하고 있다.

테헤란 벤처밸리에는 다양한 건축물이 있다. LG아트센터테헤란로논현로가 교차하는 역삼동 사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비즈니스 거리에 아트센터가 부조화될 것 같지만 거리의 기품을 한층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또 국내에서 가장 크고 다양한 최첨단 시설이 갖추어진 인텔리전트 빌딩으로 테헤란로의 랜드마크로 불리는 강남파이낸스센터도 있다. 이외에 세계적 화가인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이라는 작품이 정문 옆에 전시되어 있는 포스코센터도 테헤란로의 유명 건물 중 하나이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4.09.26 [형성 및 변천] 수정 <변경 전> 삼성역 사거리에는 한국전력·종합무역전시관·한국감정원·서울의료원 등이 이전해 왔지만 <변경 후> 삼성역 사거리에는 한국전력·종합무역전시관·서울의료원 등이 이전해 왔지만
이용자 의견
d* 한국감정원은 대구로 이전하였습니다.
  • 답변
  • 강남구향토문화전자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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