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장녕)」은 명나라 사신 장녕(張寧)이 압구정(狎鷗亭)의 풍광과 압구정의 주인 한명회의 삶을 읊은 한시. 「압구정(장녕)」은 『해동역사』 제51권, 예문지(藝文志)와 『신동국여지승람』 제6권 광주목 편에 전하는 명나라 사신 장녕(張寧)[1426~1496]의 한시이다. 최고의 권력을 구가하던 한명회는 1476년(성종 7) 여생을 유유자적하기 위해 한강 가에 압구정이란 정자를...
명나라 사신 정서후 장완(蔣琬)[?~1487]이 압구정(狎鷗亭)에 와서 지은 한시. 「압구정(장완)」은 『신동국여지승람』 제6권 광주목 편에 전하는 명나라의 정서후 장완(蔣琬)의 한시이다. 최고의 권력을 구가하던 한명회는 1476년(성종 7) 여생을 유유자적하기 위해 한강 가에 압구정이란 정자를 지었다. 한명회 소유의 정자였던 압구정이라는 명칭은 한명회가 중국 문객 예겸에게 부탁해...
명나라 진가유(陳嘉猷)가 1459년(세조 5)년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 압구정에 들러 지은 한시. 「압구정(진가유)」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6권, 광주목에 나오는 진가유(陳嘉猷)의 한시이다. 진가유(陳嘉猷)는 1459년(세조 5) 사행목적 반칙유사(頒勅諭使)로 형조판서 박원형(朴元亨)[1411~1469]의 원접을 받았다. 당시 최고의 권력을 구가하던 한명회는 1476년(성종 7...
조선 전기 문신 김수온(金守溫)[1410~1481]이 압구정을 기리는 기문(記文). 「압구정기」는 『식우집(拭疣集)』 제2권, 기류(記類)와 『속동문선』 제13권, 기(記)에 전한다. 김수온은 본관이 영동(永同), 자는 문량(文良), 호는 괴애(乖崖) 또는 식우(拭疣)이며 아버지는 증 영의정 김훈(金訓)이다. 1458년(세조 4) 동지중추부사에 올라 정조부사(正朝副使)로...
명나라의 예겸(倪謙)[1415~1479]이 조선에 사신으로 왔을 때 한명회의 부탁으로 정자의 이름을 ‘압구정(狎鷗亭)’이라 하고 지은 기문. 「압구정」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제6권, 광주목에 나오는 예겸[1415~1479]의 기문(記文)이다. 예겸은 1450년(세종 32) 사행목적 반등극조사(頒登極詔使)로 조선에 왔으며 공조판서 정인지(鄭麟趾)의 원접을 받았다...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이 성종 때 어제압구정시에 붙인 서문. 「어제압구정시의 서」는 서거정(徐居正)이 조선 성종(成宗) 때 「어제압구정시(御製狎鷗亭詩)」에 붙인 서문으로, 그의 문집 『사가시집(四佳詩集)』 제5권에 수록되어 있다. 압구정(鴨鷗亭)은 조선조 세조에서 성종 대에 걸쳐 높은 벼슬을 했던 한명회(韓明澮)가 만년에 두모포(豆毛浦) 남쪽 언덕에 지어 여생을 보냈던 정자이다....
오늘날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동명(洞名)의 유래가 된 조선 전기 문신 한명회의 호(號)이자 그가 지은 정자의 이름. 압구정(狎鷗亭)은 강남의 대표적 지명 가운데 하나인 압구정동(狎鷗亭洞)의 유래가 된 정자의 이름이다. ‘압구(狎鷗)’, 곧 ‘갈매기와 벗하다’라는 말은 정치 현실에서 물러난다는 의미를 함축하는 관습적인 표현으로 이 정자의 주인이었던 한명회(韓明澮)의 정치적 진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