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제명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1934
한자 狎鷗亭題名記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
유형 작품/문학 작품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인숙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저자 생년 시기/일시 1420년 - 서거정 출생
저자 몰년 시기/일시 1488년 - 서거정 사망
배경 지역 압구정 -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동지도보기
성격 한문산문
작가 서거정(徐居正)[1420~1488]

[정의]

조선 전기의 문신 서거정한명회가 지은 압구정의 제명에 대해 쓴 글.

[개설]

「압구정제명기」서거정(徐居正)[1420~1488]의 문집 『사가문집(四佳文集)』 제3권에 수록되어 있다. 압구정(鴨鷗亭)은 조선조 세조에서 성종 대에 걸쳐 높은 벼슬을 했던 한명회(韓明澮)가 만년에 두모포(豆毛浦) 남쪽 언덕에 지어 여생을 보냈던 정자이다. ‘압구정’이라는 제명의 유래와 임금이 친히 압구정시를 써서 하사한 일과 기문을 부탁받은 일을 소개하고 기문을 뒤에 붙여 놓았다. 현재 강남구에는 이 정자의 이름을 붙인 압구정동이 있는데, 강남개발로 아파트단지를 건설하면서 지대를 높이고 한강제방을 쌓으면서 원래 정자의 터는 사라졌다.

[구성]

「압구정제명기」는 ‘압구정’이라 이름 짓게 된 배경과 성종이 친히 압구정시를 지어 하사한 일, 기문을 써 달라고 부탁받은 일을 먼저 소개하고 그에 이어 기문을 붙여 놓았다.

[내용]

상당(上黨) 한상공(韓相公)은 훈공과 지위가 매우 높으나 가득 참을 경계하여 겸손하였으며, 한강(漢江) 가에 정자를 지어 조정에서 퇴청하였을 때에 한가히 지내는 장소로 삼았다. 공이 일찍이 표문(表文)을 받들고 경사(京師)에 갔을 때에 한림(翰林)의 예학사(倪學士)에게 이름을 지어 달라고 청했다. 한림은 일찍이 우리나라에 사신으로 나온 적이 있어서 한강이 우리나라의 명승인 줄을 알았고 또 한공(韓公)에게 겸퇴하는 마음이 있는 줄을 알았기 때문에 편액을 ‘압구(狎鷗)’라 짓고 한위공(韓魏公)의 고사를 끌어다 그 기문을 지었으며, 여러 대부들이 즐거이 창화하였다. 이로부터 한공은 중국에 세 번 들어갔는데, 큰 선비와 훌륭한 문장가들을 더욱 많이 만났다. 앞뒤로 칙명을 받들고 사신으로 나온 이들이 모두 글을 지어 주었고, 우리나라의 문인들도 이를 따라서 시를 지은 이가 또한 많았다.

주상이 그것을 듣고 가상히 여겨, 병신년(1476, 성종 7) 11월에 친히 근체시(近體詩)와 절구(絶句)를 각각 2수씩 짓고 정유년(1477) 7월에 또 칠언사운(七言四韻) 4수를 지어서 하사하였다. 문장이 찬란하고 어찰이 역동적이며 성스럽고 신령한 문체가 겹겹이 발현되어 언어로 형용할 수 없는 것이 있었다. 한공이 머리를 조아려 백번 절하고, 삼가 주상의 글들을 잘 엮어 꾸며서 정자의 벽에 공경히 걸어 놓고 아침저녁으로 우러러 보았는데, 천광(天光)이 아래로 비춤에 그 은혜를 받았다. 밝게는 해와 달이 비추는 것 같았고 그윽하게는 귀신을 감동시킬 만하였다. 산천초목이 그것으로 인해 기쁜 기색을 띠었고, 새와 짐승, 물고기와 자라들도 귀를 쫑긋 세웠다. 조정에 있는 여러 신료들도 모두 받들어 선양하였다. 어떤 이는 기문을 짓고 어떤 이는 서(序)를 짓고 어떤 이는 부(賦)를 짓고 어떤 이는 찬(讚)을 짓고 어떤 이는 시를 지으니, 마치 구슬을 꿰어 잇고 자개를 엮어 놓은 듯하며 소리가 쟁쟁하고 광채가 환하였다. 정자가 이로부터 더욱 빛나게 되었고 한공도 이로 인하여 길이 훌륭한 명예가 있게 되었다.

공이 주상이 하사한 글을 빛내고 여러 사람들의 글을 드러내고자 하여, 이미 한 질을 엮어서 간행하여 세상에 반포하였고, 또 좋은 돌을 구하여 주상의 작품 8수를 새겨서 진귀한 보물로 삼았다. 빗돌의 뒷면에다 글을 지은이들의 성명을 갖추 기록하여 영원히 전해지도록 하였는데, 중국 쪽 사람으로는 학사 예겸(倪謙)을 비롯하여 이하 모두 29명이며, 우리나라 사람으로는 월산대군(月山大君)을 비롯하여 이하 모두 75명이다. 판각을 할 즈음에 서거정에게 기문을 지어 달라고 부탁하였다.

[생각건대, 천하 사물의 이치는 형체가 있으면 반드시 피폐함이 있고 이루어짐이 있으면 반드시 허물어짐이 있다. 천지가 다하고 고금 만세가 흘러도 민멸하지 않는 것은 오직 문장과 성명뿐이다. 순(舜) 임금의 선기옥형(璇璣玉衡), 하(夏)나라의 구정(九鼎), 탕(湯) 임금의 목욕통, 주(周)나라의 궤안(几案) 등은 사물 가운데 매우 정미한 것들이지만, 지금은 다시 볼 수가 없다. 볼 수 있는 것은 전모(典謨)와 훈고(訓誥)의 문장과 고요(皐陶), 기(夔), 직(稷), 설(契), 이윤(伊尹), 부열(傅說), 주공(周公), 소공(召公) 등의 이름일 뿐이다.

삼가 성상의 글을 보건대, 참으로 크고 전일한 말씀이고 높고 넓은 문장이시다. 제현들의 작품은 군주의 글에 즐거이 창화하는 기풍이 있고 대아(大雅)의 음운이 있다. 지금 이 제명은 필시 우(虞), 하, 은(殷), 주 시대의 문장과 그 시대의 사람들과 서로 표리가 되어, 천지가 다하고 고금 만세가 흘러도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 틀림없다.]

갑진년(1484, 성종15)

[특징]

「압구정제명기」성종이 친히 지어 하사한 압구정시와 여러 문사들이 지은 시를 찬미하며 천지가 다하고 오랜 세월이 흘러도 없어지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의의와 평가]

「압구정제명기」한명회가 여생을 보낸 압구정이라는 제명의 유래를 소개하고 성종이 친히 압구정시를 지어 하사하고 여러 문사들이 화운하여 시를 지은 아름다운 뜻을 찬미한 글이다.

[참고문헌]
  • 한국고전종합DB(http://www.db.itkc.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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