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부르스」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1510
한자 永東-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작품/음악·공연 작품 및 영상물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세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창작|발표 시기/일시 1984년 - 「영동부르스」 발매
작곡가 안치행
작사자 안치행
연주자(가수) 나훈아

[정의]

서울특별시 영동을 배경으로 한 나훈아 노래.

[개설]

1984년 서울특별시 영동을 배경으로 한 나훈아의 노래 「영동부르스」가 발표되었다. 당시 영동의 화려한 밤 문화를 찾아볼 수 있는 사랑 노래이다.

[공연 상황]

가수 나훈아가 새로운 환락가로 변모한 서울 영동을 주제로 한 「영동부르스」라는 앨범을 발표하였다. 중견 작곡가 안치행이 작사와 작곡을 하였다. 「영동부르스」가 크게 주목을 받자 일본의 데이지꾸[帝蓄] 레코드회사가 나훈아의 전속과 함께 일본어 취입을 제의해 왔다.

1984년 8월 17일 서울에 온 데이지꾸 사장은 일본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 「대전부르스」가 잇달아 히트한 것으로 보아 가창력이 뛰어난 나훈아의 「영동부르스」도 큰바람을 일으킬 것이라며 전속을 제의했으나 나훈아 측에서 3억엔을 요구해 타협을 보지 못했다.

[내용]

사랑이 피어나는 영동의 밤거리

이별도 서러운데 밤비마저 나를 울리네

허전한 마음속에 떠오르는 그대모습

사랑했던 순간들이 나를 나를 울리네

밤비를 맞으면서 터벅터벅

아. 영동의 밤 부루스

님 떠난 영동의 거리 쓸쓸한 영동의 거리

미워라 내 곁을 떠난 그 사람이 미워라

나에겐 잘못이란 사랑한 죄 뿐이야

사랑했던 순간들이 나를 나를 울리네

밤비를 맞으면서 터벅터벅

아. 영동의 밤 부루스

[의의와 평가]

서울을 주제로 한 노래를 가장 많이 부른 가수인 나훈아는 「영동부르스」, 「서울의 황혼」, 「구로동의 밤」 등 총 14곡의 서울 주제 가요를 불렀다. 이 노래의 공간적 배경이 되고 있는 영동이란 지명은 영등포를 기준으로 그 동쪽 마을이란 뜻에서 유래되었다. 1973년에 성동구에 영동 출장소가 신설되어 현재 강남구 일대를 관할하면서부터 생겼다. 1975년에 영동출장소가 폐지되고 강남구청이 신설되자 이 뒤부터 강남구 일대를 영동이라고 자연스럽게 불러 영동으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40년 전 강 너머 한적한 농촌이었던 영등포 동쪽 지역 ‘영동’이 오늘날 서울에서 가장 번화한 ‘강남’으로 변하였다. 1960년대 강북의 폭발적인 팽창과 1969년 제3한강교와 1970년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촉발된 강남개발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대규모 개발 사업이었으며,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였다. 또한 개발과정에서 땅값 급등, 부동산 투기, 흥청거리는 밤 문화, 8학군으로 인한 입시과열 등 많은 새로운 풍속도와 사회적 이슈를 낳았다.

나훈아의 「영동부르스」는 영동을 공간적 배경으로 하여 유흥문화가 발달한 당시의 분위기가 담겨 있는 사랑 노래로 이 노래를 통해 서울 영동의 화려한 밤 문화를 살펴볼 수 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젊은이들의 사랑과 이별 또한 발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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