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순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570
한자 洪純彦
이칭/별칭 사준(士俊),동고(東皐),당릉군(唐陵君)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활동 시기/일시 1561년 - 홍순언 요동 압해관 지냄
활동 시기/일시 1590년 - 홍순언 광국공신 책록, 당릉군 훈봉
활동 시기/일시 1591년 - 홍순언 우림위장 승진
거주|이주지 홍순언 거주 -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성격 역관
성별
본관 남양
대표 경력 요동 압해관|광구공신|우림위장|당릉군 훈봉

[정의]

조선 전기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일대에 살았던 역관.

[개설]

조선 시대 역관으로 종계변무[宗系辨誣: 명나라에 잘못 기록된 태조 이성계(李成桂)의 세계(世系)를 시정해 달라고 주청했던 사건] 문제를 해결하고 돌아와 공을 세운 인물이다.

[가계]

생몰년 미상, 홍순언의 자는 사준(士俊), 호는 동고(東皐)이며, 본관은 남양이다. 아버지 홍겸(洪謙)과 동생 홍수언(洪秀彦) 삼부자가 유명한 한어(漢語) 역관이었다. 그러나 할아버지 홍경창(洪慶昌)은 사간원 정언, 안동 부사 등을 지냈고, 그 아들 홍신(洪愼)은 공조참의까지 지낸 문신 집안이었다. 홍순언의 아들 홍건(洪建)은 임진왜란 때 공을 세워 당상관으로 승진하고, 손자 홍효손(洪孝孫)은 숙천 부사까지 지냈다. 이렇듯 홍씨 집안에서는 홍순언 삼부자만 역관을 지냈다.

[활동 사항]

역관으로 1561년(명종 16) 길례(吉禮)에 쓰일 물품을 무역해오는 일로 요동 압해관(押解官)을 지냈으며, 선조 때 통역을 위해 명나라에 갔다가 청루에 나온 소복한 미인을 구해주고 돌아와서 1584년(선조 17) 종계변무사 황정욱(黃廷彧)을 따라 다시 명나라로 가게 되었다. 이때 과거 청루에서 자신이 구해준 여인이 명나라 예부상서 석성(石星)의 후실이 되어 만나게 되었다. 그 여인은 홍순언을 위해 ‘보은(報恩)’이란 글자를 수놓은 비단 수십필을 선사하고, 석성의 도움으로 종계변무의 어려운 임무도 완수하고 돌아왔다.

홍순언은 이 공으로 1590년(선조 23)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에 책록되고 당릉군(唐陵君)에 훈봉되었다. 1591년(선조 24) 역관으로서 우림위장(羽林衛將)을 지냈는데 서얼 출신이라는 이유로 대신들의 지속적인 탄핵을 받았다. 이어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명나라의 원군 파견을 이끌어 내는데 공을 세웠으며, 전쟁 기간에도 지속적으로 명나라 군과의 회담에 통역을 담당하곤 하였다. 말년에 홍순언은 고향인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에 살다가 여생을 마쳤다.

[상훈과 추모]

1590년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2등에 책록되고 당릉군에 봉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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