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왕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508
한자 文定王后
이칭/별칭 성렬인명문정왕후(成烈仁明文定王后)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왕족·호족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상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501년연표보기 - 문정왕후 출생
혼인 시기/일시 1517년 - 문정왕후 왕비 책봉
활동 시기/일시 1545년 - 문정왕후 수렴청정 시작
활동 시기/일시 1553년 - 문정왕후 수렴청정 끝냄
몰년 시기/일시 1565년연표보기 - 문정왕후 사망
묘소|단소 태릉 -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681
사당|배향지 종묘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
성격 왕비
성별
본관 파평(坡平)

[정의]

조선 시대 서울특별시 강남구 일대를 포함한 지역의 불교문화를 부흥시킨 제11대 왕 중종의 계비.

[가계]

본관은 파평(坡平). 아버지는 영돈녕부사(領敦寧府事) 윤지임(尹之任)이다. 중종의 계비로 소생은 1남 4녀이다. 아들은 12대 명종이며, 딸은 의혜공주(懿惠公主)·효순공주(孝順公主)·경현공주(敬顯公主)·인순공주(仁順公主)이다.

[활동 사항]

중종의 첫 번째 계비 장경왕후(章敬王后)가 1515년(중종 10) 인종(仁宗)을 낳은 뒤 산후병으로 7일 만에 승하하자, 2년 뒤인 1517년(중종 12) 17세 때 왕비로 책봉되었다. 중종인종을 세자로 책봉하였고, 문정왕후가 그 후에 아들 경원대군을 낳았다. 이에 자신의 아들을 왕위에 올리고 싶었으나 인종을 지지하는 외척세력인 대윤(大尹) 윤임(尹任) 일파에 의해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544년(중종 39) 11월 15일 중종이 승하하고 인종이 즉위하여 대윤이 득세하였지만, 인종이 재위 8개월 만에 승하하자 1545년 아들 경원 대군이 왕위를 이어 명종에 올랐다. 당시 명종이 12세였으므로 문정왕후가 8년간 수렴청정(垂簾聽政)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이 과정에서 대윤 일파를 몰아내고 자신의 동생인 소윤(少尹) 윤원형(尹元衡)에게 정권을 주어 을사사화(乙巳士禍)를 일으켰다. 그 후 다시 양재역 벽서사건으로 많은 사림 세력들을 희생시켰다. 1553년 국가 운영을 명종에게 넘겨주었으나 실질적인 권력은 계속 자신이 장악하고 있었다. 당시 그녀의 권력이 너무 강하여 지방 여러 곳에서 ‘암탉이 수탉으로 변한다’는 보고가 올라오기도 하였다.

문정왕후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1550년(명종 5) 선교(禪敎) 양종(兩宗)을 부활시키고 승과·도첩제(度牒制)를 다시 실시하였으며, 많은 승려를 뽑고 전국 300여 개의 절을 공인하는 등 불교 중흥을 도모하였다. 양주 회암사에 있던 승려 보우(普雨)를 맞아들여 지금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봉은사(奉恩寺) 주지로 임명하고, 봉은사 근처로 중종의 능을 옮겼다. 자신이 죽은 후에 합장하고자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또한 봉은사 앞 넓은 공간에서 승려들을 대상으로 한 승과(僧科) 시험을 부활시켜 많은 승려를 선발하였는데 이때 선발된 승려들 가운데 서산대사사명당과 같은 인물도 포함되어 있었다. 1565년(명종 20) 4월 7일 창덕궁 소덕당에서 춘추 65세로 승하하였다.

[묘소]

능호는 태릉(泰陵)으로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681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성렬인명문정왕후(成烈仁明文定王后)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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