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공신회맹축」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472
한자 五功臣會盟軸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문서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나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456년 11월 14일연표보기 - 「오공신회맹축」 작성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9월 30일연표보기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7호 지정
소장처 「오공신회맹축」 -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로 333[역삼동 797-3]
성격 문서
관련 인물 세조
용도 공신회맹문
발급자 세조 시기 왕세자와 개국공신·정사공신·좌명공신의 친자식과 맏아들의 자손들 및 정난공신·좌익공신과 그 자식
문화재 지정 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7호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 시대의 두루마리 문서.

[개설]

「오공신회맹축(五功臣會盟軸)」은 조선 세조 2년(1456) 11월 14일에 왕세자와 개국공신(開國功臣), 정사공신(定社功臣), 좌명공신(佐命功臣)의 친자식과 맏아들의 자손들, 정난공신(靖難功臣), 좌익공신(佐翼功臣)과 그 자식들이 평창동에 있던 북단(北壇)에 모여 동맹할 때 작성한 회맹문이다. 1996년 9월 3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었으며, 서울특별시 강남구 역삼동에 살고 있는 이항증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개국공신은 태조 이성계를 도와 나라를 세우는 데 공로가 있는 정도전(鄭道傳) 등 43명에게 내린 공훈이고, 정사공신은 1398년(태조 7)에 일어난 제1차 왕자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제2대 정종 때 의안군(義安君) 등 17명에게 내린 공훈이며, 좌명공신은 제2차 왕자의 난으로 이방원(李芳遠)태종으로 왕위에 오르는 데 공을 세운 사람들로서 1401년(태종 1) 46명에게 내린 공훈이다. 정난공신은 수양 대군(首陽大君)한명회(韓明澮) 등이 주동하여 황보인(皇甫仁)·김종서(金宗瑞) 등의 무리를 죽이고, 그들이 반역을 모의하였다고 모함한 사건이 일어났을 때 단종김종서 등을 죽이는 데 공을 세운 43명에게 준 공훈이다. 좌익공신은 수양 대군단종을 몰아내고 세조로 왕위에 오르는 과정에서 공을 세운 사람들로서 1455년(세조 1) 모두 44명에게 내린 공훈이다.

[제작 발급 경위]

조선 세조 2년(1456) 6월 단종 복위운동이 좌절된 뒤 어수선해진 정국을 수습하고 공신(功臣)들의 단합을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하여, 그해 11월 14일에 왕세자와 개국공신·정사공신·좌명공신의 친자식과 맏아들의 자손들 및 정난공신·좌익공신과 그 자식들이 평창동에 있던 북단(北壇)에 모여 회맹하고 작성 발급하였다. 이 회맹은 당시 왕세자였으나 왕위에 오르지 못하고 사망하여 덕종(德宗)으로 추존된 이장(李暲)이 주도하였다.

[형태]

고문서·권축장으로 공신록의 크기는 세로 54㎝, 길이 620㎝의 두루마리로 되어 있는데, 앞부분 약 4.5행[88자]이 훼손 탈락되어 있다. 탈락된 내용은 『세조실록』에 실려 있어 복원할 수 있다.

[구성/내용]

맨 앞부분에는 199자로 된 회맹문(會盟文)이 있고, 바로 이어 회맹에 참가한 왕자와 5공신 자손의 군호·공신호·직함·성명과 수결(手決)이 있다. 양녕 대군(讓寧大君)을 포함한 3대군과 9군(君), 226명의 공신 이름이 기재되어 있으며 178명이 수결을 하였다. 공신록의 내용은 오공신과 그 자손에게 내려준 나라의 은혜를 잊지 말고 동심협력하여 국은을 갚기에 힘쓸 것과 왕에게 충성을 다하고 공신 자손 간에도 단결하고 협력할 것을 종묘사직에 다짐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의의와 평가]

현존하는 공신회맹문으로는 가장 오래된 것 중의 하나로서, 당시 오공신과 그 자손들의 동향과 조선 초기의 정치 인물들을 연구하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또 정인지·권람·신숙주 등 조선 초기 명사들의 수결이 망라되어 있어 당시의 수결을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