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800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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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柳漵墓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서울특별시 강남구 율현동 산7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나각순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409년 - 유서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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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 시기/일시 | 1485년![]() |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485년 - 유서 사망 |
현 소재지 | 유서 묘 - 서울특별시 강남구 율현동 산 7![]() |
성격 | 능묘 |
관련 인물 | 류서 |
서울특별시 강남구 율현동에 있는 조선전기 무신 유서(柳漵)의 무덤.
유서[1409~1485]의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자는 포옹(浦翁)이며, 아버지는 동지중추원사 유은지(柳殷之)이다.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숙하여 음보(蔭補)로 벼슬에 올랐으며, 1429년(세종 11) 종7품 무관직인 좌군섭부사정에 제수되었다. 1453년(단종 1) 계유정난(金宗瑞) 때 김종서(金宗瑞)를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워 추충정난공신(推忠靖難功臣) 3등에 녹훈되고, 상호군으로 승진함과 동시에 사전(賜田) 100결, 노비 7구, 말 1필, 백은 10냥, 표리 1단을 상으로 받았다. 1459년(세조 5) 첨지중추원사에 제수되었으며, 1466년 가선대부에 가자되어 문천군(文川君)에 봉하여졌다. 1469년(예종 1) 가정대부 중추부동지사로 승진하고, 1484년(성종 15) 자헌대부에 가자되었다. 이듬해 세상을 떠나니 시호는 양호(襄胡)이다.
헌릉로 세곡동 사거리에서 수서역 방향으로 가면 오른편으로 율현동 방죽2마을이 나오는데, 이 마을 주택지 동남쪽에 있는 야산의 정상부 남동쪽 중턱에 묘가 있다.
묘는 원래 쌍분이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봉분 하나만 남아있다. 좌향은 동남향이고, 묘표와 상석이 갖춰져 있다.
봉분 앞에 묘표가 있는데, 형태는 하엽형(荷葉形)으로 2면비이다. 앞면 상단에 횡(橫)으로 ‘유명조선(有明朝鮮)’이라고 써져 있고, 하단에 종(縱)으로 ‘우추충정난공신자헌대부문천군증시양호공류서지묘 좌정부인김씨지묘(右推忠靖難功臣資憲大夫文川君贈諡襄胡公柳漵之墓 左貞夫人金氏之墓)’라고 새겨져 있다. 뒷면에는 ‘성화이십일년을사십이월이십일장(成化二十一年乙巳十二月二十日葬)’이라고 새겨져 있어 1485(성종 16)에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크기는 관석 72×48×32㎝, 비좌 52×95×18㎝이다.
마을 뒤 야산에 묘와 함께 잘 보존되어 있다.
조선 전기 하엽형 묘표를 볼 수 있어 사대부 묘제 연구의 자료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