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395
한자 李厚原神道碑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동 산39-1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나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98년 - 이후원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660년 - 이후원 사망
건립 시기/일시 1685년연표보기 - 이후원 신도비 건립
현 소재지 이후원 신도비 - 서울특별시 강남구 자곡동 산39-1지도보기
성격 신도비
관련 인물 이후원(李厚源)
크기(높이) 옥개석 120×84×44㎝|비신 73×170×31㎝
소유자 광평대군파 종중
관리자 광평대군파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48호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후원(李厚源)의 신도비.

[개설]

이후원[1598~1660]은 광평 대군의 7세손으로, 자는 사심(士深), 호는 우재(迂齋)이며, 아버지는 군수 이욱(李郁)이며, 어머니는 판서 황정욱(黃廷彧)의 딸이다. 사계 김장생(金長生)의 문인이다. 오늘날 강남구 수서동 일대인 광주군 대왕면 궁촌에 살았다. 인조반정 때 정사공신 3등으로 완남군에 봉해졌으며, 태인현감을 지냈다. 이괄의 난 수습에 기여했으며, 1627년 정묘호란 때 총융사가 되어 포로를 다수 포획하였고, 단양·태안군수를 거쳐 한성부서윤이 되었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로 청에 결사항전할 것을 주장하였다. 1644년 심기원의 역모를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웠으며, 1650년 효종의 북벌계획에 전함 200척을 준비하는 등 적극 참여하였다. 한성부판윤·이조판서·우의정·지춘추관사 등을 역임하였으며, 『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송시열·송준길 등을 발굴하여 중앙 정계에 중용하는 등 인재양성에 힘을 기울였다. 1668년(현종 9)에 시호 충정(忠貞)이 내려지고, 1685년(숙종 11)에 광주 수곡서원에 제향되었다.

[건립 경위]

이후원의 묘역은 현종 1년(1660) 조성된 초장지 경기 금천(衿川)[오늘날 광명시] 일직촌(一直村)[일직동] 삼석산(三石山)[호봉골]에서 1685년 광주 세촌(細村) 금성산(金星山)을 거쳐, 숙종 40년(1714) 현재의 위치인 광주 지곡자(池谷子)[자곡동]로 이장되었다. 신도비는 이때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위치]

광평대군파 묘역 안에 위치해 있으며, 광수산 앞 언덕 너머 대모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는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의 동쪽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신도비는 옥개형 4면비로, 옥개석은 팔작지붕이며 별다른 조각은 없다. 비제(碑題)를 따로 두지 않고 ‘신도비(神道碑)’란 표현이 없이 라고만 새겨, 신도비의 일반적인 형태를 따르지 않은 모습이다. 봉분 앞에 따로 묘표가 있고, 일반적으로 신도비를 세우는 곳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에 신도비로 추정하고 있다. 비문은 1682년 우인(友人)이라고 표현한 영중추부사 송준길(宋浚吉) 짓고, 송시열이 추기를 지었으며, 당대의 명필인 행돈령부사 이정영(李正英)이 글씨를 썼으며,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두전을 썼다. 비는 1685년 이장될 때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데, 당대 이름난 학자와 명필들의 글과 글씨를 확인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크기는 옥개석 120×84×44㎝, 비신 73×170×31㎝이다.

[금석문]

전액(篆額)에 ‘우재상국완남충정공묘(迂齋相國完南忠貞公墓)’라고 새겨져 있고, 비문은 1682년 우인(友人)이라고 표현한 영중추부사 송준길(宋浚吉)이 짓고, 송시열이 추기를 지었으며, 당대의 명필인 행돈령부사 이정영(李正英)이 글씨를 썼으며,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두전을 썼다.

[현황]

광수산 앞 언덕 너머 대모산 동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는 완남부원군 이후원 묘역의 동쪽 아래에 있다. 묘역 안의 분묘 1기와 석물 8기 등이 2009년 12월 30일 서울특별시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되었다. 전주이씨 광평대군파 완남부원군 종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도비의 일반적인 형태를 따르지 않은 모습으로 비제와 신도비라는 표현이 없는 특이함을 보이며, 당대 이름난 학자들과 명필들의 글씨를 확인할 수 있게 하는 자료로 정사(正史)인 실록 등을 보완하는 사료적 가치를 가진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