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316
한자 廣州府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나각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정 시기/일시 광주목은 1577년(선조 10)연표보기 - 광주부(廣州府)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623년(인조 1)연표보기 남한산성을 쌓은 뒤 1626년(인조 4)연표보기 - 유수부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연표보기 - 광주군으로 강등
개정 시기/일시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연표보기 - 광주부로 승격
개정 시기/일시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연표보기 - 광주군으로 강등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가 포함된 광주 지역에 설치되었던 조선 시대 행정구역.

[제정 경위 및 목적]

광주부는 1577년(선조 10) 광주목광주부로 승격하면서 설치되었다. 광주목은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온 행정구역체제였다. 그런데 한편 1504년(연산군 10) 이후로는 때로 고을이 혁파되기도 하고 승격되기도 하였다. 그런데 1505년(연산군 11) 광주인의 난언으로 광주목을 혁파하였으며, 1511년(중종 6) 옛 고을을 회복시켜 다시 광주목을 설치하였다. 이러한 읍호의 폐치와 승강격은 유교주의에 입각한 일벌백계의 시범을 보여주는 예교주의(禮敎主義) 국가의 한 단면을 나타내는 것이다. 즉, 토지 면적이나 호구에 관계없이 왕후의 내향, 왕 또는 왕자의 태실이 있는 곳, 국가에 공헌한 사람의 마을, 전쟁에서 공을 세운 자의 마을인 경우 건의에 따라 향읍을 승격(陞格)시켰으며, 이와 반대로 국가에 반역 또는 음모자가 있는 향, 난언을 유포한 자가 있는 고을은 강격되었다.

광주목은 1577년(선조 10) 광주부(廣州府)로 승격되어 부윤이 방어사를 겸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는 수어부사(守禦副使)를 겸하였다. 1626년(인조 4)에 옛 남한산성을 개축하고 읍치를 성내로 옮겨 수도방어를 위한 특수 행정구역으로 삼았다. 이어 광주목은 병자호란을 치르고 난 뒤 1636년(인조 14)에 다시 부로 승격되어 부윤을 두게 되었다. 1652년(효종 3)에 수어청 경영과 관련하여 겸수어제사가 설치되었으며, 1683년(숙종 9) 유수부(留守府)로 승격되었다. 이후 1759년(영조 35)까지 광주 유수의 시대를 맞이하였는데, 1759년(영조 35)에는 다시 광주 부윤을 두었다. 1795년(정조 19)에 다시 정2품아문 광주 유수부로 승격되어 갑오개혁에 의해 광주군으로 개편되는 1895년까지 지속되었다. 이와 같이 광주부임진왜란·병자호란과 이괄의 난 및 이인좌의 난 등 전란과 내란을 겪은 뒤 수도방위체제를 위해 수어청을 비롯한 5군영체제가 확립되면서 급기야 정2품아문인 유수부로 승격되기도 하였다.

1895년(고종 32) 5월 26일 칙령 제98호에 의해 전국 행정구역체제였던 8도와 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의 편제를 폐지하고 23부와 339군의 2원적으로 구성되게 되었다. 이때 광주 지역은 부에서 군으로 격이 낮아지면서 한성부의 관할이 되었다. 이어 다음해인 1896년 8월 4일 칙령 제36호로 발표된 ‘지방제도관제봉급경비개정의 건’에 의하여 다시 13도로 개편되었지만, 광주군은 다시 경기도 광주부로 승격되었으며, 그 관할 아래 광주군은 1등관[전국 군을 5등으로 구분] 고을에 편성되었다. 하지만 1906년 9월 24일 칙령 제49호로 발표된 ‘지방구역정리의 건’에 따라 10월 1일자로 광주군으로 강등되어 다시 한성부 관할 아래 광주군수를 두게 되었다. 이러한 행정구역 개편은 물론 일제의 간섭에 의한 것이었지만, 19세기 말의 한국 근대화과정에서 새로운 지방제도를 실시해야 한다는 것은 하나의 시대적 요청에 의한 것이었다.

[내용]

광주부는 고려 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광주목에 이어 선조 10년에 광주부로 개편되어 지방행정구역이나 관청의 지위가 관찰사의 바로 예하 또는 관찰사와 같은 격으로 운영되었다. 그리고 인조 때 유수부가 되어 유수와 부윤체제가 번복되면서 영조·정조 연간까지 한성 방위체제의 일환으로 남한산성에 치소를 두고 경영되었다. 갑오개혁으로 한성부 산하 광주군 또는 광주부 산하 광주군으로 개편되면서 한 단계 낮은 지방행정단위로 편제되었다.

[변천]

조선 전기 광주목을 계승하여 1577년(선조 10) 광주부(廣州府)로 승격되었다. 임진왜란효종의 북벌계획 추진에 따른 방위체제의 강화로 1623년(인조 1) 남한산성을 쌓은 뒤 1626년(인조 4)에는 유수부로 승격되고 유수가 수어사를 겸하게 되면서 읍치를 이곳에 옮겨 수도방어를 위한 특수 행정구역이 되었다. 1636년(인조 14)에 다시 부로 승격되어 부윤을 두게 되었고 1683년(숙종 9) 유수부(留守府)로 승격되었다. 1759년(영조 35)에는 다시 광주 부윤을 두었으며, 1795년(정조 19)에 다시 정2품아문 광주 유수부로 승격되어 갑오개혁에 의해 광주군으로 개편되는 1895년까지 지속되었다. 1895년(고종 32) 갑오경장에 의한 지방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한성부 관할 광주군, 광주부 관할 광주군이 되었다가 급기야 경기도 광주군으로 변하였다.

[의의와 평가]

고려 시대의 전통을 계승한 광주목을 계승한 광주부는 수도를 제외하고 가장 큰 지방행정단위로 운영되었으며, 특히 전란과 내란을 겪은 뒤 수도방위체제를 위해 남한산성에 설치한 수어청 수어사를 겸하게 되어 그 중요성이 극대화 되었다. 이후 갑오개혁으로 일제에 의해 근대성을 띤 지방제도 개편에 따라 경기도 예하 하나의 군 단위 행정구역으로 낮아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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