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나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4800298
분야 지리/동식물
유형 식물/식물(일반)
지역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집필자 소현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지역 내 자생|재배지 배나무 과수원 - 서울특별시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
성격 수목
학명 Pyrus pyrifolia (Burm. f.) Nakai var. culta(Makino) Nakai
생물학적 분류 식물계>속씨식물문>쌍떡잎식물강>장미목>장미과>배나무속>배나무
원산지 일본
높이 7~15m
개화기 4~5월
결실기 9~10월

[정의]

서울특별시 강남구에서 재배되었던 장미과 배나무속의 낙엽활엽소교목 또는 교목.

[개설]

과거 일제 강점기에 강남구 압구정동 일대에는 과수원이 많이 분포하였는데, 배나무는 이때 가장 많이 재배하였던 유실수 중 하나이다. 1960년대 강남 도심 개발로 인해서 과수원이 사라지면서 현재는 배나무를 볼 수 없다.

[형태]

배나무는 낙엽 소교목 또는 교목이며, 높이 7~15m 정도로 자란다. 배나무 수피는 진한 회색이나 흑자색이며 오래되면 수피가 불규칙하게 갈라진다. 배나무의 어린 가지는 자갈색이나 갈색이고 타원형 또는 원형의 피목이 있다. 배나무 잎은 어긋나고 길이 7~12㎝의 난상 타원형이나 난형이다. 잎 끝은 길게 뾰족하고 밑부분은 넓은 쐐기형이나 얕은 심장형이며, 가장자리에는 끝이 바늘 모양인 뾰족한 톱니가 있다. 배나무 잎자루는 길이 3~4.5㎝ 정도이다. 배나무는 4~5월에 잎이 나는 동시에 짧은 가지 끝에 백색의 양성화가 5~10개씩 모여 달린다. 꽃잎은 길이 8~10㎜의 도란형 또는 원형이며 작은 꽃자루는 길이 3~4㎝이다. 꽃받침열편은 피침형이며 안쪽 면에 백색 털이 밀생한다. 수술은 20개 정도이고 꽃잎보다 짧고, 암술대는 5개이고 수술보다 길다. 배나무 열매는 지름 4~6㎝ 정도의 구형이지만, 개량종은 지름 15㎝까지 커진다. 열매는 9~10월에 황갈색으로 익으며, 표면에는 연한 갈색 반점이 흩어져 있다.

[생태]

배나무는 일본 원산으로써 전국에서 재배하는 유실수이다. 재배하는 배나무류는 전 세계에 20여 종류가 있으며 크게 일본배, 중국배, 서양배의 3품종군으로 나눈다. 이 중에서 일본배는 돌배나무의 재배종인데, 다양한 종류의 품종이 있다.

[역사/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일제 시대 강남 지역이 속했던 광주군은 18개 면, 과천군은 7개 면이었다. 당시 강남과 서초 지역은 지리적으로 서울에 가까워서 다수의 일본인이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소유인 전답을 대부 받아 직접 경작을 하거나 조선인의 전답을 사들여 소작을 시키면서 지주 노릇을 하였다. 1930년 「국세조사보고서」에 의하면, 광주군 내에 368명의 일본인이 살았는데, 그 중에서 4분의 1인 90명이 언주면에 거주하였다. 이 중에는 서울에서 가까운 농촌인 강남 일대에서 누에치기 등을 지도·감독하는 사람들이 다수 있었으며, 배밭 경영자가 많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광주군 인구 총 수 83,827명 중에서 88.6%에 해당하는 29,495명이 농업에 종사하였으나, 이 중 자작이나 소작 등 농경업주는 13,389명뿐이고 나머지는 머슴을 위시한 농업 노무자들이었다. 특히 농경업주 중에서 과수재배업 종사자가 1,796명으로 13.4%를 점하고 있어서 이 지역 다수가 과수원이었음을 알 수 있다.

6.25 전쟁 이후 주로 강남 지역 일대에서 채소 공급을 맡았기 때문에 당시 한강의 남북을 왕래하는 나룻배는 채소 보따리로 가득 찼다고 한다. 또한 생활이 개선되면서 과일의 수요가 중대하게 되자 과일만 전문으로 재배하는 농가도 출현하였다. 당시 묵동의 먹골배와 성북동의 복숭아가 유명하였는데, 강남구 일대에도 과일 재배가 성행하였다. 신사동·청담동 등지는 앵두의 산지로 유명하였고, 율현동에는 대규모 밤나무 단지가 인공적으로 조성되었다. 또한 배나무와 감나무가 곳곳에서 무성하였다. 강남 일대 농가가 채소·약재·과일 재배를 통해서 높은 수익을 창출한 것은 서울이라는 방대한 소비시장을 끼고 있다는 시장성 때문이기도 하지만, 높은 토지 이용률과 집약적 경영성에도 기인한다.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대 전반에 걸쳐서 강남 지역 일대는 영동1·2구획정리사업이라는 택지개발을 시작으로 하여 배밭을 포함한 경작지가 모두 사라졌다. 이와 관련하여 1970년대 초에 한 기업가가 사업차 길을 나섰다가 압구정동 배나무밭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중 갑자기 이곳에 땅을 사서 아파트를 짓자는 생각을 한 뒤로 이 일대가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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